돈
가난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다.
하나는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것이고
하나는 자기의 욕심을 줄여 스스로 만족 해 지는 수밖에 없다.
이는 톨스토이의 말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후자 보다는 전자를 택하여 돈을 벌어 부자가 되어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보다 나은 내일의 삶을 위해 무한한 도전으로 생활에 활기를 불어 넣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어디까지가 행복해 질수 있는가 하는 선을 정하는 일이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 가져도, 가져도 더 가지고 싶어 하는 제동장치가 없는 무한질주의 자동차와 같다고나 할까? 누가 여기 까지만 이라고 하고 욕심에 도달했다고 만족 해 할까?
톨스토이가 아니더라도 우리네 속담이 있지 않는가. 말(馬) 사면 종두고 싶다는 말이 어디 어려운 문장이 아니지 않는가.
돈을 벌어 부자가 된다. 이론상으로는 돈을 벌면 당연히 부자가 될수 있겠지만 그런 부자는 영원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 돈을 많이 가진 부자도 자기가 충분히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아홉을 가진 자가 하나 밖에 없는 자로부터 나머지 하나를 빼앗아 열(十)을 만들고 싶은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니 세상에 부자는 없는 것이다. 재물은 무지개와 같아서 움직이는 목표가 되어 있어 이 지점일 것이다 생각되는 지점에 도착하면 벌써 저 만큼 이동해 버려 또 다른 곳으로 우리를 손짓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행복해 지는 방법으로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방법은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되지 못한다.
첫 번째의 방법이 대안(代案) 되지 못한다면 나머지 하나를 생각해야만 한다. 얼마를 버느냐가 행복의 기준이 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만족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돌아가야 한다. 보다 큰 안목에서 우리의 존재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의미를 되살려 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地球)는 태양계(太陽系)의 작은 행성(行星)에 볼과하다. 태양은 지구의 130만배의 크기라고 한다. 이런 태양과 같은 별이 ‘우리태양계’에 1,000억개가 존재하고 있다고 하니 이것이 우주의 개념이다. 이러한 크기의 ‘우리태양계’가 다시 1,000억개가 존재하여 우주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는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무량(無量)’의 숫자도, 억만겁의 개념도
좋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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