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깨끗한 방
우 대 식
강원도 산간
낡고 깨끗한 방안에 들어 윗목에 놓인
멍석이며 멧방석이며 홍두께를 바라보다.
내 할머니며 어머니의 쓸쓸한 죽음도
생각해 보는 것이다
고양이 발목을 적시던 빗물도 가끔
창호를 두드리다 문득 눈물처럼
번지기도 하는 것이다
황매화, 백매화 우드커니 비를 맞는
만춘(晩春)의 먼 뜨락,
불두화 아래 지나가는 뱀처럼
나 죄가 많다
연당, 연하, 에미, 자미원, 별어곡, 나전, 여랑, 구절
석탄으로 멱을 감은 태백선 간이역
슬픈 향가는 내몸에 박혀
목어(木魚) 배지느러미 아래 앉아
흐린 발등을 닦아 보기도 하는 것이다
따뜻한 이 방안에 누워
먼 바다 집어등을 켜든 한 척의 배가 되어
망망대해의 어지러운 꿈속을
헤매다 돌아오곤 하는 것이다
어미 잃은 검은 고래가 되어 등을 지지며
낡고 깨끗한 방안에 누워 있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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