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온달(2008)

늙다리 친구들

온달 (Full Moon) 2015. 4. 13. 12:30

늙다리 친구들

 

석현수 

 

 

뒤 늦게 되돌아오는 연하카드는 무언가 찝찔하다. 부산했던 연말연시가 한참이나 지난 뒤 붉은 스템푸로 벌겋케 얻어맞고, 주소불명이나 소재지에 이런 사람 없음이란 항목에 쐐기표로 책크가 되어 뒤 늦게 되돌아오는 반송 우편물은 돌아온 탕자(蕩子) 같이 초라한 모습으로 우편함에 놓인다. 일 년에 단 한번 나누는 새해 인사를 답장 없이 떼어 먹거나, 되돌리는 경우는 필경 큰일을 만난 연로한 친구들의 경우이다. 벌써 스무 해가 넘도록 한해도 빠짐없이 연하장을 주거니 받거니 하였는데, 어느때 부터인가 갑작스레 생사확인이 어려운 친구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우편함에 쌓이는 반송우편물의 숫자가 말해 준다. 

 

 

내게는 바다건너에 친구들이 여럿 있다. 대부분 친구들은 본인 보다, 스무 살이 위인 친구들이다. 그들은 해외 주재원 근무를 통해 업무를 관련하여 서로 어울렸던 사람들이기에 내가 환갑이니 지금은 모두 여든이 넘는 고령자 들이다. 인사치레(Season's Greeting)가 오가는 년 말이 되면 친구들에게 성탄 또는 연하 카드를 보낸다. 안부를 전하는 것을 포함해 더러 더러 한 해 동안 있었던 집안의 대소사에 대한 이야기 들을 나눈다. 외국어로 글을 쓰는 불편함으로 치면 카드 한 장도 귀찮고 거추장스러울 것 같지만 강산이 두어 번 변하는 세월동안 늘 상 해 오던 일이라 그런지 지금까지도 습관성 카드 보내기는 계속되고 있다. 이런 빌미로 인해 어떤 친구는 한국에 왔던 적도 있었고, 때론 내가 여행이 마땅치 않을 때는 그들의 곳을 방문하여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언제 부터인가 연하장은 인사치레보다는 오히려 간접적인 생사확인의 메신저로 둔갑되었다. 왜냐하면 이 친구들의 나이가 어언 팔순을 넘기고 보니 하나씩 둘씩 떠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미 해병대 대령으로 전역해서 엔진회사(P&W)에 간부로 있던 ‘에드 (Edward)’는 업무상 자주 옥신각신 하였던 사이로, 양 국간 업무의 이해가 얽히면 그리 협상이 용이 하지 않았던 친구였다. 후일 회사 일도 손 놓으면 마을 초등학교에 자원봉사 요원으로 자국 역사를 가르치겠다고 했던 친구다. 서로 먼저 자기 쪽에 방문해 달라는 고집을 피운 통에 실상은 헤어진 후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20년의 세월을 보냈다. 스무 해가 넘게 서로 연하장 만 오갔다. 서로가 헛 인사쯤으로 생각하고 한번 쯤 놀러 오지 않겠느냐는 식이었다. ‘지금 당장’이 아니면 ‘언제 한번’ 쯤이란 말은 약속이 아니다 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답신은 두어해 전부터 멈추었고, 지난해 1월이 넘어서야 늦깎기 회신이 부인으로부터 왔다. 내용인 즉 그동안 잊지 않고 보내온 편지에 대한 감사와, ‘에드’는 지난 10월 심장마비로 타계했으니, 앞으로는 부인인 자신이 대신해서 답을 보내겠노라 하며, 일찍 소식을 드리지 못해 미안 하다는 짧은 메모를 보내왔던 것이다.  

 

 

올해에도 연하장 두장이 되돌아 왔으며, 다른 한장은 되돌아오는 것조차도 잊어 버려 미궁에 빠져 버렸다. 모두 10장 넘게 보낸 중에 3할이 탈이 난 셈이다. 수취인 불명의 딱지를 달고 되돌아온 우편물은 친구 ‘멜(Mel)’ 과 ‘톰(Thomas)’이며, 누군가 받긴 받았는듯 되돌아 오지 않았지만 회신이 없었던 친구는 노스릅(Northrop) 항공사에 일했던 ‘던(Done)’이다. ‘던’은 얼마 전 다른 인편을 통해 지난여름 작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항공 종사원답게 자신의 경비행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내가 가주기만 하면 ‘라스베가스’로 자가용 비행기를 태워 주겠다던 친구였다. 다행스럽게 내가 하는 존경하는 선배 한분이 그의 장례에 참석하고 돌아왔다는 소식으로 조금은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편지가 되돌아온 ‘멜(Mel)’과 ‘토마스(Thomas)’ 두 사람의 행방은 묘연하다. 두 사람 모두 한국 프로젝트에 열심히 성의를 보였던 걸쭉한 친구이었으니 더욱 아쉬움이 크다. 이들도 그만 하직한 것일까? 전화번호를 간신히 찾아 통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이것이 언제 전화번호인데, 20년이 훨씬 넘게 오래전에 메모한 전화번호로써 통할 리가 없다. 존재하지 않는 번호임으로 다시 한 번 번호를 확인하고 걸어 보라는 녹음만 되풀이 될 뿐이다. 한해에 세 명의 친구를 보낸 셈일까? ‘멜’은 그래도 여든이 살짝 못 미친 양반이니 내가 ‘긴가 민가’ 하고 있다. 금년 연말에도 전처럼 안부를 물어야 하나? 상대의 행복을 소망하는 연하장이기 보다는 생사확인을 점검하는 듯 마음에 부담이 되는 것은 친구들의 나이가 모두 여든을 훨씬 넘고 한 사람 한사람이 하늘의 불림을 받고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산(精算)처럼 하나 둘 씩 이름을 지워야 하는 친구들. 이번 여름엔 직접 그들을 찾아 안부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한 친구가 전화가 연결 되었다. 친구의 목소리는 나이에 답지 않게 아직도 칼칼했다. 맥주 골통 쟁이 '데일(Dale)' 이다. 친구에게 더 이상 목젖이 탄력을 잃기 전에 좋아하던 쿠어스(Coors) 맥주 한번 쿨(Cool)하게 마셔보자며 여름 상봉계획을 제안해 놓았다. 

 

 

'著書 > 온달(2008)'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신을 먼저 대접하자  (0) 2015.04.13
팔순 잔치  (0) 2015.04.13
사람보기   (0) 2015.04.13
김치   (0) 2015.04.13
잘해줘도 탈  (0) 2015.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