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먼저 대접하자
석현수
딸아이가 출산을 앞두고 있어 우리 내외는 산모의 가사(家事) 원정(遠征)에 나섰다. 식구야 자연스레 산모를 돌보는 일을 맡으니 긴급출동 목적에 맞게 업무가 할당 되었지만 내게는 정히 맞는 일이 없었다. 이제는 몇 달 편하게 지나게 되었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아주 큰 숙제가 내게 떨어졌다. 송아지만한 개(犬) 돌보기였다. 식구가 할 산모 뒷바라지는 귀여운 아기를 돌보는 일이니 재미있다고 생각되었지만, 내가 할 일이 개 돌보기라니, 이는 삼복더위에 그리 달가운 일감이 아니었다. 그러나 딸아이가 어찌나 개를 애지중지 하던 차라 갓난 아이도 중요했지만 개 또한 잘 살펴야 할 대상으로 부담스러웠다. 무사히 소임을 마칠 수 있을까? 여간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주인이 귀히 여기고 있으니 덩달아 나도 그놈 대접에 소홀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이 정승 모시듯 해 왔는데 임시 보호 역할을 맡을 대타(代打)로써 주인 이상으로 잘 대해 주어야 내게도 정을 붙이고 따라 다닐 것이 아닌가. 개는 큰 덩치에 어울리게 어찌나 힘이 센지 한번 씩 고집을 부릴 때는 허리가 휘청거렸다. 골든 트리비어(Golden retriever)라고 했고, 사냥개의 일종이란다. 더러 영화에서 우람한 장면을 보기는 했으나 막상 다뤄보니 매우 유순하여 맘이 놓였다. 단독주택에 살 때 마당에 개를 키워본 경험이 있어 이들의 속성(屬性)은 대충 알고 있기에 다행이다만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큰 일 날뻔 했다. 고삐를 틀어쥐고 산보를 할 때는 다른 사람들의 이목(耳目)이 온통 내게 쏠린 듯 어깨가 으슥해 지기도 했다. 진돗개를 몰고 모양을 내던 때 보다는 한 단계 그레이드 업이 된듯하여 드라마 속의 노주현(?)이 된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겸손의 뜻으로 또는 일부러 자신을 낮추기 위해 자기 것을 소홀히 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의도야 예절 바르고 좋은 것이겠지만, 요즈음 세태에서는 달라져야 한다. 자기 PR 시대이다. 내가 내 것을 알아주지 않으면 남도 내 것을 알아주지 않는다. 딸아이가 애지중지 하고 있지 않았던들 내게도 그놈이 귀하게 여겨졌을까? 집안일이 넘쳐나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일거리 하나가 붙어난 것쯤으로 생각하고 짜증스레 개를 나에게 맡겼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인계 받은 본인 또한 개에 대한 대접이 주인보다 더 소홀해 졌을 것이다. 특별히 시범을 보여 가며 간수를 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애비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무언의 강요 같은 것이 느껴졌다.
집안에서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 같다. 손님이 있거나 가족들이 다 함께하는 저녁 식탁은 넵킨이며, 수저며, 쟁반까지 있을 자리에 제대로 놓여 격식을 차린 식탁준비를 한다. 그러나 주부 혼자 앉게 되는 경우 그 차림은 전혀 모양이 다르다. 허술하기 짝이 없다. 뚝배기 채로, 아니면 남겼던 음식을 그대로 올려놓기도 하여, 갑자기 하녀 밥상 모양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내가 나를 대접을 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대접해 줄 것인가. 혼자 먹는 식탁일수록 스스로 우아한 모양 갖추기를 권하고 싶다.
개 운동은 일상 내가 해오던 산보 운동량에 맞추다 보니 좀 많을 것 같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본인의 운동량을 이놈에게 맞추어 줄일 수는 없다. 한 시간 넘게 산보를 하면 개는 뒷심이 약해 막판에는 뒤뚱 걸음이다. 아마도 출산 뒷바라지가 끝날 쯤에는 깡마른 트레이너를 닮아가 살이 쏙 빠지지 않을까 싶다. 개와 같이 하는 운동은 잠시도 방심해서는 곤란하다. 미리 대비하고 다녀야 할 것은 비닐 봉투와 부삽이다. 시간이 좀 길다 싶으면 두 개정도를 준비하고 다니는 것이 좋다. 멀쩡하던 놈이 사람들이 많은 곳만 지나면 약속이나 한 듯 실례를 벌이니 사전 준비가 소홀하면 신사체면을 형편없이 구기게 된다. 맨손으로 처리도 못하고, 그렇다고 도망 갈 수도 없지 않는가. 이놈의 뒤처리를 깔끔하게 처리 하지 못하면 동네 사람들로 부터 무례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흔히 행실이 바르지 못할 때 개차반이라고 한다. 개의 행동은 원하는 만큼 고분하지 못하다. 그러나 아이가 너무 좋아하는 동물이다 보니 개차반이 되어야 할 개 돌보기도, 견공(犬公)을 모시는 마음으로 여름 비지땀을 흘렸다. 그리고 개와 아이에게 얻은 한가지 교훈은 이것이다. ‘스스로를 대접하라.’ ‘자기 자신을 귀한 존재로 먼저 대접하자.’ 그래서 일부러 라도 귀한 태(態))를 내어보자. 내가 내 것을 소중이 다룰 때 남도 내 것을 소중이 여겨준다. 드러나지 않는 곳, 일상의 생활에서도 분위기를 띄우고 우아해 지려 노력할 때 나는 남들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우아해 지려는 자기 노력이 없으면 무의식 중에 남의 눈으로 허술한 나의 모습이 새어나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