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온달(2008)

저승사자를 만나다

온달 (Full Moon) 2015. 4. 13. 15:02

저승사자를 만나다

 

석현수 

 

 

 

멀리서 보이는 도인의 뒷모습은 한 방향을 응시한 채로 고정 되어 있었다. 백 미터가 넘는 거리에다, 뒷모습만 들어내 보이고 있어 남녀 성별조차도 분간이 쉽지 않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며 하얀 소복(素服)으로 보아 산장의 여인 같기도 하고, 고쳐 보니 장발한 사내가 하얀 장삼을 입은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분명한 것은 어느 쪽이든 밝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심야(深夜)가 아니어도 깊은 산중, 인적이 드문 절간에서 갑자기 접하는 모습으로는 섬뜩했다. 등산로에 죽어 팽개친 뱀 한 마리에 기분을 망친 뒤끝 이어서 그런지 의도적으로 눈길을 다른 곳으로 얼른 돌리긴 했지만, 순간에 각인(刻印)된 기인(奇人)의 모습은 그럴수록 묘한 힘으로 나를 끌어당기고 있어 시종일관 마음을 자유스럽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사찰은 그리 넓지 않아 둘러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으나, 절 구경은 하는 둥 마는 둥 내 마음이 송두리채 그에 의해 휘둘리고 있었다.  

  

모든 사찰이 저자 거리나 다름없어 어느 곳에 가더라도 번잡하기 짝이 없으나 이곳은 아직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입장료조차도 없으니 청정 무공해 지역이라, 조만간 개발이 되기 전 서둘러 한번 가보라는 권유가 있었다. 특히 절에는 동해 용왕의 아들이 앉았었다는 돌 의자가 있으니 꼭 그 자리에 앉아 풍경을 조망(眺望) 해 보라는 귀뜸도 해 주었다. 따라서 마지막 순서는 당연히 그 돌 의자를 찾아 앉아 보는 것이었다. 직감적으로나 행색(行色)으로 보나 쉽사리 도인이 앉은 자리가 바로 그 돌 의자가 아닌가 생각되었고, 그가 그렇게 오래 동안 자리하고 있는 것만 봐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거의 가까운 거리에 까지 접근은 하였지만, 말을 건네기는커녕 숫기 많은 소년처럼 얼어붙었고, 도망치듯 그의 곁을 빠져 나왔다. 다만 소복한 산장의 여인이 아니라, 하얀 장삼의 사내라는 것만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지척의 거리에 까지 접근을 해 보아도 눈도 까딱 않고 틀에 박혀 앞에만 시선을 고정한 모습은 내게는 공포며, 위협이며, 불길한 미스테리였던 것이다.  

  

나는 사찰 안내표지에 언급된 돌너덜을 살펴보며 그 돌들의 유래를 더듬고 있었다. 돌마다 각기 다른 종소리를 내기 때문에 종석(鐘石)이라 한다기에 작은 돌로 바위를 통통 두드리며 그 소리를 확인하면서도 순간순간 고개를 들고서는 그 도인의 행적을 주시 하곤 하였다. 드디어 때가 왔다. 그자가 자리에 일어선 것이다. 그렇다면 얼른 달려가 자리를 차지해야지. 그런데 그 도인이 내 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미 그 돌의자 쪽으로 가고 있는데 말이다. 공교롭게도 서로는 마주치게 되어있으니 참으로 입장이 고약하다. 그가 내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것일까? 오래 동안 그의 주위를 맴돌며 힐끗 거린 죄로 참선에 분심이 들도록 한 여죄를 따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려와는 달리 그와 나는 가까스로 비껴 스쳐 지났고, 얼굴을 바로하지는 못했지만 공포분위기는 면하였다. 드디어 나에게도 돌 의자에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마치도 등받이가 있는 소파 같은 모습이었다. 허지만 앉는 순간 그 도인의 온기는 그때까지 돌 의자에 배어있었고 그래서 개운하지 못한 느낌이 아래로 부터 스멀스멀 내 몸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이상한 분위기가 계속 나를 따라 다니는 듯 했다. 별것도 아닌 것에 별 다른 의미를 두다니. 얼른 하산해야지. 그리고 찝찝한 분위기를 떨쳐야지. 

 

사찰 문을 나오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넉넉잡아도 5분도 되지 않았다. 입구에는 조생종 코스모스 몇 포기가 가까스로 인색한 가을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검은 페인트로 아무렇게나 쓴 사찰 입간판을 뒤로 하고 걸어 나오는 순간, 하얀 소나타 승용차 한대가 소리 없이 내 뒤에 서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비껴서는 나를 향해 하얀 장삼의 도인은 창문을 내리고는 같이 타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는 입가에 묘한 웃음을 건네고 있었다.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불현듯 나는 저승사자를 연상했다. 드라마 속에서는 항상 검은 옷에 검은 갓을 쓰고 음흉하게 웃는 모습이라지만, 흰 승용차 까지 동원하여 흰 옷을 입고 나를 속이려 하다니. 순간 나는

‘아닙니다. 저는 등산 중에 있거든요’.

그러자 그는 한 번 더 권해 왔다. 나는 단호했다.

‘같이 가고 싶지 않아요.’ 라고.

그가 저승사자인지, 도인인지, 아니면 싸구려 역술인인지 나는 아는 바 없다. 그러나 그가 띄운 섬뜩한 마지막 분위기는, 영락없는 저승사자였다. 그는 나를 태우고는 벼랑을 굴러 날개를 달고 한 없이 저승으로 달려 갈 것만 같았기에 지금 생각해도 모골(毛骨)이 송연(竦然)하다.  

 

 

 

 

 

 

 

 

'著書 > 온달(2008)'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계탕  (0) 2015.04.13
따르는 마음(Followship)  (0) 2015.04.13
다름과 틀림  (0) 2015.04.13
인간적인 것이 좋다  (0) 2015.04.13
표정관리  (0) 2015.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