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온달(2008)

소달구지 경영

온달 (Full Moon) 2015. 4. 13. 15:09

소달구지 경영

 

                                             석현수

 

 

 

터키의 어떤 고장에 가면

나귀를 거꾸로 타고 가는 한 노인의 그림이

이곳저곳 간판에 그려져 있다고 한다.

노인의 이름은 '호자' 이다.

'호자' 노인의 나귀 등 돌려 앉기는

길을 잘 알고 가는 나귀를 쓸데없이 간섭하는 것 보다는

오히려 나귀의 등에 거꾸로 돌아 앉아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한다.

 

저희 아버지는 소달구지로 한 평생을 사셨다.

하루 중, 밤길 다섯 시간 낮길 다섯 시간

10시간 이상을 길에서 지내야 했던

노상인생(路上人生)을 사셨던 것이다.

밤길보다 낮 길이 더 힘드셨으니

퍼붓는 잠 때문이었으리라.

일단 나뭇짐을 거래 한 다음은

아버지는 소달구지에 걸터앉아 주무시고,

모든 임무는 소한테로 넘기셨던 것이다.

소는 반백리 길을 뚜벅뚜벅 걸어

제가 알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긴 세월에 아무 탈 없이 신작로(新作路) 인생을 사신

아버지와 그리고 동업자 역(役)이었던 소를

천운(天運)을 타고난 우인동체(牛人同體)라

지금도 생각 하고 있다.

 

너무나 익숙해 진 길을

공연히 간섭하여, 소도 사람도 같이 피곤한 상황을

만들어 가기 보다는

집 찾아 가기는 이제 동물이 더 이력이 나 있다고

생각하고 소에게 임무를 넘기신 것이다.

'호자' 노인의 나귀등 거꾸로 타기와

아버지의 소달구지 노상 취침은

시대와 장소만 다를 뿐 취지는 같은 것이리라.

 

아버지의 임무는

효과적인 짐 실기 이다.

요즘 말로하면 중량과 평형(Weight and Balance)이다.

뒤쪽으로 무게 중심을 너무 보내면

소가 편할 것 같아도

오르막일 경우 질메가 벗겨지는 사고가 날 수 있고

앞으로 무게 중심이 너무 기울면

과중한 무게가 걸려 내리막에는 소를 넘어지게 한다.

진정으로 소를 동업자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흔들어 대는 채찍이 아니라

꼭 아버지가 해야 할 일을 하시는 것이었으니

적절한 부하(負荷)를 거는

짐 실기 즉 Load master 역할이었던 것이다.

숙달된 길을 매일 같이 오가면서도

부질없는 간섭으로 불안 해 하며

소를 힘들게 하기 보다는

짐승이 알아서 우차(牛車)를 끌고 가도록 맡겨 주는 것

나는 이것을 아버지의 '달구지(牛車) 경영' 방법이라

이름 하여 보았다.

혹여 우리는

모든 일에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에

소라도 할 수 있는 일 까지

내가 나서서 챙기고 있지나 않는지

한 번쯤 생각해 봄 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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