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생 돼지
석현수
정해 년 초하루입니다.
돼지해는 분명합니다마는
60년만의 황금돼지 일 줄은 몰랐네요
600년 만의 황금돼지로 인플레 될 때는
내 존재도 무척 우아해 보였어요
집값 치솟듯
돼지 줏가도 천정부지로 올라 갑니다
60년만이다, 600년만이다,
헛소리가
헛소리를 낳아
웬만한 새해 연설문 앞에 끼어드는
삼천만의 돼지 타령이 되었습니다.
한술 더 떠 꽃 돼지해라 부르는 이도 있고요
가는 곳 마다 좋다 좋다하니
더욱 신명이 납니다.
이러다 정해년 말에는
관상용 돼지를 매달 런지요?
냄새나고, 불결한 돼지우리에서도
아무튼 볕들 날이 있나 봅니다.
신문이나 잡지에 등장하는 돼지는 모두
나비넥타이를 목에 달았네요
유럽귀족 부인에게나 써질
보닛(bonnet) 모자를 쓴 놈도 있고요
닭똥 주어먹고 멍석에서 기었을
우리가 났을 정해 년, 60년 전,
지금처럼 돼지 송(頌)이 없었을 텐데
허기진 배, 보릿고개 넘었을 텐데
지지리도 복 없는 돼지였을 텐데
그때는 부자 집 장롱 속에도 황금돼지가 없었을 테니
꽃 돼지라 부르지도 않았겠지요?
상술이 불러들이는 위력
돼지우리(豚舍)에서도 향기를 내도록 하는 시대
얼떨결에 콧노래를 불러봅니다
황금 돼지, 복 돼지, 꽃 돼지,
새해가 찾아드니
갑년을 맞는 오래된 돼지도
허울 좋은 골동품 돼지가 되어
괜스리 어깨가 으슥해 지고
억세게 운 좋은 출생의 내력을 가진
귀한 돼지가 된
정해년 새해가 밝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