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온달(2008)

별난 애정 표시

온달 (Full Moon) 2015. 4. 13. 15:40

별난 애정 표시

 

                         석현수

 

 

 

세상에 무뚝뚝하기로서니

이런 사내가 또 있었을까?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

마을에 한 농부가 있었다

별다른 능력도 없으면서 아이들은 많이 낳아

흥부네 처럼 여섯 남매나 두었다

그의 개똥철학은

자식이란 낳기만 하면

제마다 자기 밥숟갈을 가지고 온다나?

아낙은 항상

사내랑 그만 살겠다고

입버릇으로 말 하면서도

줄줄이 아이 낳고 혼자도 힘든 보릿고개를

고행(苦行)같이 더불어 건너는 것이다

천하에 정남이 없는 사내라고

입버릇으로 말 하면 서도 말이다

사내의 돈벌이는 나뭇짐 팔기

더해서 갈치 꼬리만한 자갈밭 몇 뙤기 뿐

시쳇말로 경제능력 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사랑 때문에

꼴난 사내의 어설픈 애정 표시 때문에

속아서 한 해를 사는 것이었다.

"이눔의 종낙 들아 밖에 나가 놀아라."

불화 같은 사내의 성화에 여섯 아이는

집밖으로 내 몰리고, 삽짝(大門)을 문은 닫힌다

그리고는 아내는 부엌으로 호출이다

"이년아 오늘이 네 생일이다

이거나 먹어라, 귀한 거다"

무뚝뚝한 사내가 내미는 것은

삶은 계란 몇 개

그것은 전일(前日) 마을을 돌며 간신히 구한 계란이었다

눈물이 가려, 목이 메여,

아내가 북받쳐 우는 동안

무뚝뚝한 사내는 위로의 말도 없이

휑하니 지게 지고 산으로 향해 버린다.

사내의 기행(奇行) 같은

단 한 번의 애정 표시가

또 한해를 속아 사는 아낙의 힘이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장미꽃 백 송이를 들고

무릎 꿇고 숨 넘어 가는 애정 표시를 해도

이혼율이 30% 가 넘는 세태에

단지 삶은 계란 몇 개로

아내를 사로잡던 무뚝뚝한 사내의 모습

꽃을 든 남자(?) 보다 감동적이지 않는가

무뚝뚝한 남편과

허기진 아내들이 살아가던 모습이었다 

 

그리 오래지 않은

내가 어릴 적 마을에 있었던 일

벙어리 같이 무뚝뚝했던

시골 남정네들의 카리스마가 가끔은 그리울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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