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도 배가 고파야
석현수
시간이 많으면 생각도 많을 줄 알았다. 속 깊은 글도
써 보고, 바빠서 생각 못한 부분을 챙겨 보기도 하
고. 쫓기는 것 없어, 무궁무진한 글감도 생겨날 줄
알았다. 하루 종일 극적 대면서 날 저물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바쁜 가운데 쪼개어
내는‘짬’이 더 여유가 있었고, 쫓기고 사는 가운데
글 같은 글이 됨을 알았다. 시름없고 아픔 없고, 무
릅쓸 일 없다면, 웃자란 나무처럼 생각은 쉬이 휘어
지고 맺고 끊음 없어 문장이 밋밋해 진다. 가난했던
한 올림픽 육상선수는“라면 먹고 뛰었을 때가 기록
이 좋았다”한다. 배에 기름기 끼고, 시간이 넉넉해
지면 되레 마음이 먼저 녹슬어 버리기에 글도 배가
고파야 잘 써지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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