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먼저 보내고
석현수
응급실에서
장례식장까지 100m 도 안되는 거리를
나흘이나 걸려 도착했으니
걸음이 어지간히 더딜 줄 알고
자넨 떠나지 않을 줄 알았다네
에이, 흥할 양반
퇴직한지
일 년 남짓 되었나, 못되었나?
또래들 이래저래 퇴직 여행 분주할 즈음인데
무엇이 바빠 먼 하늘 길 먼저 떠나시나
돌아 올수 만 있다면 살짝 돌아오게나
동문들이 다음 야유회는
가까운 중국 예기를 하고 있다네
앞서거니 뒷서거니
누구나 가야할 길이지만
자네가 주저 없이 먼저 내 디딘 건가
우리 보다 한발 빨랐을 뿐이라고 그러드먼
죽는다는 게 뭐 별건가?
몰아쉰 숨 뱉지 못하면 저세상이지
그게 곧 별세가 아닌가
이 싱거운 양반아
잔치 꼴이 이게 뭐야
학연, 지연, 직장연까지
아는사람들 급히 오라 해 놓고
왁자지껄 시장바닥 같은데
정작 자네는 보이지 않고
국화꽃 사이에
사진 한 장 빠끔히 얼굴 내밀었구먼
시절이 좋아져서
환갑에 죽어도 요절夭折이라는데
친구들이 둘러 앉아 자네를 원망하고 있군
너무 빨리 갔다고
요단강 조심해 건너거라
에이, 아까운 사람
죽어서도 부자 될 양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