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선생출신(2010)

말이 달라지고 있다

온달 (Full Moon) 2015. 4. 15. 08:32

말이 달라지고 있다 

 

석현수 

 

아프리카 오지奧地에서는 숫자 개념이 그렇게 크지 않아 하나, 둘, 셋, ‘많다’라고 만 표현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제 아무리 자그마한 나라의 살림살이라도 억, 조, 경을 넘는 천문학적인 숫자놀음을 하는데 이런 정도라면 같은 지구에 살고 있어도 외계인이나 다름없다. 직업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학문의 깊이도 깊어지고, 세상 또한 넓어져 자고나면 달라지고 있는데, 말인들 여북할까? 말도 도구와 방법이 달라질 경우에는 전하는 의미가 반드시 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먹물로 쓴 두루마리 상소문을 달포나 걸려 한양으로 올리던 때의 의사소통 기간이 한 달이었다면, 지금의 전자메일 시스템에서는 지구 어느 곳을 소통하던 간에 1초의 시간 차이가 나지 않는 거의 동시성을 가지고 메일을 주고받는다. 천리 길이 내 앞에 서 있는 개똥이 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는 사이버 시대에 살고 있다. 의사소통이 주로 인터넷 채팅이 되고, 휴대폰 문자 보내기로 이어지다보니, 말은 더욱 함축적으로 변해가고 급기야 생면부지의 기형아 모습이 된 것도 많다. 복잡한 전철 속에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라. 그 손놀림은 어찌나 빠른지 번개 같아서 초를 다투는 암호 병 같은 긴장감이 돌지 않던가? 열심히 공부하라고 당부를 하기에는 너무 장황하고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열공’ 달랑 두 글자면 족하다. 몰래 카메라를 ‘몰카’ 라는 단어를 쓰면 제법 눈뜬 아버지 세대쯤 될 것이나, ‘도촬’ 이라는 문자를 날리는 세대는 훨씬 또래다워져서 저희들끼리만 키득거리고 있을 것이다. 

 

신조어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를 놓고 논쟁을 한 적이 있다. 찬반 모두의 공통분모는 어떻게 하면 모국어를 지켜나갈 수 있을까 이다. 따라서 우리말을 가꾸고 보전해야 한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신조어속의 비속어를 솎아내 주어야 한다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대부분의 비속어는 소통을 도우는 의미에서 부득불 생겨난 것이라기보다는 급조된 것들이어서 품위가 없을 뿐 아니라 경망스러운 것들이다. 이런 신조어들은 훗날 언어체계를 흔들어 놓을지 모를 혼란을 가져 올 수 있다. 특히 인터넷이나 휴대폰에서 나타나는 유행어들은 같은 또래나 끼리 외에는 의미가 전달되지 않아 세대 간의 언어 소통의 장애를 줄 수가 있다. 얼마 전 딸아이가 쇼 프로그램 티켓을 두 장 사다 주기에 우리 부부는 모처럼 극장나들이를 하였다. 젊은 사람들 노는 곳이라 조금 예측은 하고 갔지만 진행하는 젊은이의 말들이 하도 생경해 마치도 이상한 나라에라도 온 듯 착각하게 했다. 평소 나름대로 앞서가는 사람이라 자부했지만 막상 이들 속에서는 부부는 외로운 섬이 되어 고립을 면치 못했다. 

 

‘노무현 스럽다’는 신조어를 듣고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지는가? 몇 해 전 우리말 사전에 신종어로 등재된 말이다. 신문지상이나 인터넷에서 하도 많이 대통령 두들겨 패기를 하다 보니 아예 국어 학자들도 나서서 신종어로 등재로 해 버린 듯하다. 우리만 신조어를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니다. 거의 동시대에 미국에서도 ‘오바마 스럽다You are so Obama’는 말이 유행했다. 그러나 다른 것은 ‘오바마 스럽다’가 상당한 존경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말이 의미가 엇갈리는 것은 보면 두 사람의 캐릭터가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야 있겠지만 그보다는 문화적 차이 때문이지 않겠는가. 지도자를 뽑고 큰 탈이 없으면 그냥 믿고 따르는 서양의 풍토와, 우리 같이 설령 대통령 자리에 올랐더라도 출신성분을 들이대는 풍토가 한 사람의 대통령을 별나게 만들어 버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신조어에 대한 학자들의 반응도 찬반의 논리가 극명하다. 한쪽은 대부분의 신조어들은 비속어, 또는 불량스런 언어로 생각하고 삼가 해야 한다는 측과 다른 한쪽은 언어의 새로운 생성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쓰이는 빈도에 따라 이것을 수용하여 언어소통을 도모해야 한다는 쪽이다. 언어란 한 시대의 문화인데 인위적으로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는 것도 아닐 테고, 두루뭉수리 흘러내리는 시류라고 생각하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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