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선생출신(2010)

안개

온달 (Full Moon) 2015. 4. 15. 08:36

안개  

 

석현수 

 

대구는 안개가 심한 도시는 아니지만 요즈음 와서는 무척 잦고 짙어졌다. 특히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이맘 때 즈음은 지척을 가리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아마도 주위의 물 막음이 많아지고, 낙동강이나 금호강이 관개가 잘 되어 연중 흐르고 있는 물 때문이리라.  

 

나는 아침에 시간짐작을 자명종 소리대신 해돋이의 낌새로 한다.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 제일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건너편 아파트 벽면이다. 벽면에 쓰인 대문짝만한 아파트 이름이 희미하게 윤곽을 내 보이는 때가 다섯 시 경이고 훤히 읽을 수 있으면 여섯시다. 시계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대충 10분 내외의 오차로 거의 정확하다. 그러나 근간에는 총명한 시간 분별력이 안개 때문에 총기聰氣가 가려지고 있다. 덕분에 늦잠 변명을 만들어 주어 새삼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안개는 젊은이들이 좋아한다. 사랑하는 연인들을 위해 휘장을 둘러주는 신비로움에 안개는 더욱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비밀스럽게 숨어드려는 연인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해 준다. ‘지척을 모르게 농익은 안개여, 오늘도 나는 너에게 감사하노라’라고 노래했던 젊은 날의 추억이 새롭다. 이것은 모두 안개가 주는 안온함과 희미함 때문에 살아나는 분위기다. 안개는 일상의 삶에서도 앞이 내다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 신비스러움을 더해 줄 때가 많다. 정치하는 사람들도 묘하게 일이 돌아갈 때를 안개정국이라고 하지 않던가.  

 

선문답처럼 아리송하며 그러기에 더욱 철학적으로 보이는 것이 안개의 매력이다. 우리네 삶도 안개처럼 시야를 적당히 흐려놓고 사는 것이 훨씬 편할 때가 있다. 좋고 싫어함이 분명하면 친구가 없고, 셈이 너무 밝으면 장사눈은 어두워진다고 했다. 다소 역설적이긴 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꽤 많은 사람들이 ‘칼 같다’거나 ‘사리가 분명하다’거나 하여 맺고 끊음이 분명하다는 칭송을 좋아한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고 싶어 한다. 나 또한 여느 사람과 같이 이러한 칭송을 덕담으로 생각하고 선호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직장 생활을 마치고 퇴직한 마당에 지난 일들을 생각해 보니 이런 자랑스러운 칭송 때문에 반대급부 또한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별난 성격에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지나 않았을까 염려가 된다. 꼬장꼬장 살기 보다는 안개 같이 좀 부드럽게 살았다면 인간미가 더 있었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런 생각은 오래지 않다. 지금 당장 그 시절 그 자리에 되돌아간다면 과연 형성된 모진 성격의 때를 벗고 살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긴 하다. 빈 마음으로 살아도 손해될 것 하나 없고, 가족 부양의 의무도 마친 상태에서 부담 없이 하는 퇴직자의 말과는 사뭇 다를 수도 있겠지.  

 

여하튼 옳고 그름을 뚜렷이 구분하는 통에 이렇다 할 깊은 사귐의 친구도 마련하지 못했고, 셈 또한 맑아서 큰돈도 만져 보지 못했으니 옛말을 너무 가볍게 흘려듣고 살아왔던 탓일까. 그렇더라도 뿌옇게 살아가라는 처세라면 스스로 민망하다. 나는 셈이 흐린 사람하고는 같이 자리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무조건 떼쓰거나 우격다짐하거나 목소리 크기를 조절할 줄 모른다는 것은 셈이 밝지 못하다고 본다. 애매하게 네 것이 내 것이고 내 것이 또한 내 것이란 주장에 사는 사람, 네 것 내 것 구분이 확실하지 못한 곳에 다툼이 빈번하지 않을 리 있겠는가. 자기가 담당한 짐의 무게와 주장할 권리의 한계는 그을 줄 모르는 사람은 안개로 덥혀 있는 사람이며,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해 뜬 뒤 숨어버릴 안개 얼굴들이다. 

 

아파트 허연 벽면에 새벽안개가 진하게 드리웠다. 평소 대중하던 새벽시간이 미심적다 싶어 시계를 들여다본다. 생각 밖에 벌써 여섯시가 넘었다. 그러고 보니 한 시간이상 잠자리를 떨치지 못하고 뒤척이고 있었나 보다. 안개가 가져오는 묘한 반추. 뜨물같이 허옇게 살아야 하는 건데. 은근 슬쩍 나를 감추고 편하게 휘장 치고 사는 사람들의 처세가 그럴듯해 보이는 순간이다. 어정쩡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살아간다면, 보일 듯 말듯, 잡힐 듯 말듯 얼마나 편리한 안개의 생활이 되어 질까.  

 

안개는 무궁무진한 인생의 여러 길 중 한 길을 나에게 들이대며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듯하다. 그러나 곧 해가 뜨면 안개는 곧 걷히고 우리는 여전히 가던 길을 계속 가야만 한다. 섣불리 흉내를 낼 수 없는 저마다의 살아가는 모양새가 있기 때문이다. 

 

 

 

'著書 > 선생출신(20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박등 기대   (0) 2015.04.15
꼬리 내리기   (0) 2015.04.15
신춘문예   (0) 2015.04.15
<나그네>의 명과 암   (0) 2015.04.15
잠복도 복이다   (0) 2015.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