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등 기대
석현수
지난 3월 둘째 딸 집에 다니러가서 뒤뜰에 호박을 심어 놓고 왔다. 구덩이 다섯 곳에 부엽토를 잔뜩 쓸어 넣고 공을 제법 들였다. 10월 마지막 날은 할로윈데이Halloween day다. 딸아이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장식용 호박은 어떻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서다.
인터넷을 정보를 읽었다. 호박은 특히 거름이 좋아야 한단다. 헛간shed에다 플라스틱 용기를 감춰 두고 딸아이 몰래 ‘쉬’ 때가 되면 호박구덩이에 쏟아 부었다. 마음 같아서는 큰 것이라도 묻어 주고 싶었지만 신사체면에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러다 자식에게 들키는 날엔 호박도 혐오식품이 되어 버릴 수 있고 사위한테 장인 체통도 말이 아닐 것 같아서 마지막 품위는 유지하였다.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열매 하나가 방울만 하게 보이더니 다음 것이 나타날 즈음해서는 앞서 것이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반복된 현상에 대해 원인을 규명하지도 못하고 어영부영 고민하다 귀국 날자가 되어버렸다. 돌아와서도 계속 의문을 가졌었다. 물을 적게 주어서 그럴까? 병충해 일까? 거름은 내가 최선을 다했으니 영양부족은 아닐 테고.
오자마자 텃밭 가꾸기를 즐기는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모두 퇴직한 학교 동창들이다. 서로들 작농 경험들을 의견 교환하는 자리였으며 내가 ‘터 사모’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고추 서른 근을 내야할 소출에 달랑 세근을 수확했다는 신문사에서 퇴직한 친구 하나만 빼고는 모두 상당한 농사꾼이 된 친구들이다.
호박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두말 할 것도 없이 거름 부족이란다. 쑥스러웠지만 숨겨 쓴 플라스틱 통 이야기도 털어 놓았다. 친구들은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마지막 수순인 인분까지 사양하지 않았어야 했단다. 그러고 보니 호박이 나의 체면을 통 채로 넘보았던 것일까?
수확을 기다리는 것은 전문 농사꾼보다 아마추어가 더하다. 설마 다섯 구덩이나 심었는데 한두 곳 쯤은 성공했겠지? 아직도 호박 구덩이 숫자에 미련이 있다. 아기가 둘이나 딸린 몸에 친정아버지 떠난 후 물 한 바가지라도 제대로 주었을까 생각하니 휴무 날에는 늘 늦잠만 자던 게으른 사위에게 까지 원망이 번진다. 설마 시장에서 사다 놓고서는 아버지 심은 호박이라고 꾸며대지는 않을 테지.
손자들이 호박 등〔Jack- O'- Lantern〕을 보고 환호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이거 할아버지 심은 호박이야! 하는 소리가 곧 들릴 것 같았다.
주: Halloween day 는 ‘모든 성인(聖人)의 날’ 전야(前夜)(10월 31일)제이다. 둥근 호박의 속을 파내고 험상한 얼굴 모양을 만든 다음 그 속에 불을 켜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