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똥나무
석현수
가로수가 변변치 않은 한길이어서 6월 햇볕이 벌써 따갑다. 봄인가 했더니 벌써 여름이 왔나 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나를 한길 가에 세우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진한 라일락 향이었다. 4월이면 몰라도 꽃철이 한참이나 지났는데….
나는 라일락을 최고로 치고 있다. 꽃의 아름다움은 모양에 있기도 하지만, 라일락은 모양에서보다는 매혹적인 향기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꽃의 자태가 사람의 외모라면 그 향기는 인품에 비김이다. 화려함이야 함박만 한 목단이나 지순의 목련, 불꽃같이 타오르는 영산홍이나 진달래가 있겠지만, 향기로는 누가 뭐래도 라일락이 으뜸이지 않을까 싶다. 라일락 향기를 맡으며 걷는 산책길이라면 여간 분위기 없는 사람이라도 냄새의 근원을 쫓아가 꽃송이를 얼굴에다 갖다 대고 코 맞춤을 해 줄 것이다.
간혹 시절이 이른 것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라일락은 늦은 사월에서 이른 오월이 제철이다. 지금은 6월이다, 라일락꽃은 아닐 테고, 어디서 짙은 화장을 한 여인이 있어 라일락 향수 바람을 보내고 있는 걸까? 대낮에 난데없는 꽃향기로 나를 유혹하는 묘령의 여인은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두리번거리며 코를 벌름거리며 향기가 나는 곳을 따라가 본다.
내가 멈춰 선 곳은 바로 쥐똥나무 앞이 아닌가. 정말 쥐똥나무 향기일까 싶어 몇 번을 얼굴에다 대고 눈을 감아 보곤 한다. 길 양편에 길게 늘어선 쥐똥나무, 꽃이라면 꽃일 테고, 피었다면 폈느냐 싶을 정도로 싱거운 꽃, 작은 잎사귀 아래로 하얀 꽃들이 점점이 얼굴들을 숨기고 있다. 하찮아 보이는 것이 이렇게 대단한 향기를 내뿜다니. 꼭꼭 숨어도 머리카락 때문에 들키는 아이처럼, 작은 꽃들은 진향 꽃향기 때문에 술래잡기를 싱겁게 끝냈다.
라일락 향기로 착각하다니 쥐똥나무에게 미안했다. 사물은 저마다 타고난 만큼의 제 복을 가지는 법이거늘, 쥐똥나무의 향기는 쥐똥나무의 복이다. 라일락 향기 같은 쥐똥나무라는 표현은 분명히 나의 잘못된 표현이다. 쥐똥나무 향기는 라일락의 모향模香이 아니라, 쥐똥나무의 본향本鄕이다. 라일락은 쥐똥나무에게 향기의 권좌를 내 주어야 할 것 같다.
야생으로 자라는 쥐똥나무는 아카시아만큼이나 큰 것도 있지만, 거리의 것들은 전지가위에 잘려나가 제 키대로 자라지 못한다. 중국 여인의 전족纏足 같은 운명이랄까. 꽃이 피기 전에 키 고르기를 먼저 강요당하는 나무, 오가는 길손이 보기 좋을 만큼 각진 얼굴로 다듬어져 길옆을 늘어서야 하는 관목이다. 여름에도 겨울보다 냉혹한 박해와 숙청의 시련을 감당해야 하는 순교의 여인 같은 나무다.
가을이면 까만 열매를 쥐똥같이 달았다고 쥐똥나무란다. 손쉽고 기억하기 쉬울 이름을 붙여 준다는 것이 그만 고약한 작명이 되었다. 아무거나 잘 먹고 무럭무럭 자라라고 불러주던 개똥이가 그만 커서도 개똥이가 된 모양새다. 황홀한 향취에 취해 보니 쥐똥나무에 향목香木이란 별호를 특별히 달아주고 싶다. 다행이 새로운 문화어로 ‘검정 알 나무’로 부르기로 했다니 그나마 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