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기쁨거리(2011)

책을 만들자

온달 (Full Moon) 2015. 4. 15. 09:42

책을 만들자  

 

석현수 

충청도 어느 곳에서는 ‘1인 1책 펴내기 운동’을 펼쳤다. ‘책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는 말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다른 이의 책을 읽어 지식을 쌓은 사람은 자신이 진 빚을 저술로 남겨 또 다른 이에게 보답하자는 운동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책 내기를 쑥스러워 했다. “제가 이번에 큰일 한번 저질렀습니다.”라든지, ‘졸고, 졸저’라는 표현을 해가며 지나친 겸손으로 수선을 떨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책 내는 것은 예삿일이 되어 쑥스러워하거나 겸손을 떨 일이 아니다. 그만큼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누구도 책을 못 쓸 만큼 재주 없지는 않다는 뜻이다.  

   

조선 정조 때의 문신이며 실학자 저술가인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흠흠신서』,『경세유표』등 무려 500권이 넘는 책들을 펴냈으며, 이 책들은 대부분이 19년이나 지속한 유배지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집필한 것이다. 무명옷 한 벌도 본인이 길쌈으로 해결했을 시절에, 책에다 그 많은 시간을 쏟아 부은 다산의 저술활동이 얼마나 돋보이는가. 오늘날과는 비교하려야 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어려움이 따랐지 않았겠는가. 가물거리는 호롱불에, 양반다리로 상머리에 앉아, 먹 갈고 종이 접어 하루에도 기껏 몇 장에 머물렀을 글쓰기 진도를 생각하면 500권이란 분량은 기적에 가까운 숫자일 것이다.  

   

다산 같은 위인이 요즈음도 있다. 존함은 밝히지 않겠지만 과학문화연구소 소장이란 직함을 가지셨던 분이다. 그는 첫 저서 경『하이테크 혁명』을 시작으로 이후 16권의 책을 썼다고 한다. 200자 원고지 3,000장 분량의 원고를 쓰는 데 걸린 시간이 두 달이었다고 하니 하루에 50장씩 이상을 쓰는 중노동을 해온 셈이다. 굳이 연필로 쓰기를 고집하는 것은 그저 지우고 쓰는 재미 때문에 원고지가 좋단다. 열정은 불편을 이기고도 남는다. 

 

선배 한 분은 자신의 고희 회고록을 만들기 위해 무려 10년이란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다행히 본인의 능력으로는 컴퓨터가 불가능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짬짬이 시간을 가지고 살아온 이야기들을 적어 놓으며 행사 사진들을 잘 정리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책 한 권이 가능했었다. 그분의 아날로그 식 저술 능력으로는 한 권의 회고록도 다른 이가 만든 두꺼운 대하소설을 능가한다. 그렇게 긴 기간 동안 중도 포기를 하지 않은 덕분에 그분의 삶과 생각을 후진들에게 전할 수 있었으니, 본인은 얼마나 보람이며 읽는 후배들은 또한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인터넷 시대에 우리가 공유하는 정보와 습득한 지식의 양과 질을 생각하고, 편리한 컴퓨터 활용능력에 비추어볼 때 우리는 옛 어른들보다는 훨씬 더 많은 저술을 남겨 주어야 한다. 대낮 같은 형광등, 허리를 곧추세우는 의자 생활, 분당 200자를 넘는 타속打速으로 수백 번 고쳐 써도 종이에 구멍을 내는 일이 아닌 워드작업, 출력물로 뽑으면 곧바로 책이 되는 시절에 살면서 어찌 자서전이나 하나 내고 저술을 그만둘 것인가. 책에 관한 한 모두가 젊은 세대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젊다는 것은 사무엘 울만의 ‘청춘The Youth’에서처럼 나이가 젊은이가 아니라, 정보화 시대에 발맞추는 마음이 젊은 사람을 말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박정진 시인은 시인으로뿐만 아니라 수필가, 비평가, 그리고 인문사회학 분야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100권의 책을 펴냈다. 그분의 책은 대부분이 300쪽이 넘는다고 하니, 분량으로서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두꺼운 것들이다. 모 대학 교수님 또한 30년 동안 100 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그는 본인의 저서에 적었던 머리말만 모아 책으로 발간했으니 이것이 <김윤식 서문 집>이다. 서문만 모아 보아도 능히 한 권의 책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현대의 기술 발전 속도는 빨라 과거의 백 년이 지금의 일 년치에 못 따라갈 만큼 초고속 시대에 살고 있다. 직업도 많이 다양해져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수직적이고 단순한 사회구조에서 수천수만으로 쪼개져 나간, 직업의 수평화, 전문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반면에 분야 간의 벽은 점점 더 높아져 잠시만 소홀해도 시대에 뒤떨어지게 되어 있다. 복잡다단한 지금의 생활 폭을 생각하면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는 충분히 서로가 서로에게 귀한 스승이 될 수 있기에 해당 분야의 저술가들이 되어야 한다. 손 전화 문자메시지 하나 보내는 일도 잘 모르면 초등학생에게라도 물어 해결하지 않으면 당장 불편하지 아니한가. 남이 쓴 책으로 삶에 눈을 뜬 사람은, 이제는 자신이 쓴 책으로 다른 이들을 깨우쳐야 할 차례다. 한 권의 자서전이나 남기고 세상을 떠나기엔 아는 것이 너무 많고, 저술환경 또한 너무 좋지 아니한가? “책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는 표어는 현대를 살고 있는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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