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香水
석현수
향수를 뿌리고 밖을 나서고 싶었다. 이제 겨우 멋을 알기 시작해 늦깎이 치레를 하려는 것일까? 스스로 향기를 발산할 수 있는 시기가 지나서 인공의 향기라도 가미해 남의 시선을 끌어 보려는 발버둥인가?
백화점 향수 판매대 앞에서 서성인다. 이름이며 향기며 모든 것이 서툴러 선택이 만만치 않다. 이것저것 만지다 보니 어느덧 코와 손끝은 잡동사니의 향취가 배어들어 식별능력이 뚝 떨어져 버린다. 취향을 먼저 정해놓지 않고 낯선 물건 앞에 서니 선택이 더욱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땀이 많은 사막지방에서 몸 냄새를 감추기 위해 향수를 뿌린다고 하거늘 내가 이놈을 필요로했던 시기는 바로 매일같이 땀범벅이 되었던 젊은 때가 아니었을까? 그냥 두어 밋밋했을 청춘의 겨드랑이에 슬쩍슬쩍 위장 향기를 매달아 인간미도 향기롭게 포장 해보고 숨도 못 쉴 사랑도 해 보는건데. 불현듯 어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옷은 젊을 때 잘 입어야지 늙어지면 제 아무리 입어도 태가 나지 않는단다.”
친구 귀동냥으로 쓸 만한 것을 구해 놓고 보니 막상 밖을 나설 일이 없어진다. 그렇다고 산책하러 가면서까지 이 비싼 물건을 듬뿍 쏘아붙여 다닐 수도 없지 않은가? 서양 취향의 탁 쏘는 맛을 선호하는 친구 따라 같은 상표를 택한 것도 문제였다. 몰골이 다른데 감히 잘생긴 친구의 향취를 모방하려 하다니. 영화배우의 머리 맵시를 고집하는 미용소의 아둔한 여인 같은 어리석음이다.
나는 한물간 인생일까? 시계 팔아 여인의 빗을 산 사내와 머리카락을 팔아 사내의 시곗줄을 산 아낙처럼 운명은 빗나가는 것인가. 모처럼 구한 귀한 것이 쓰임새를 찾지 못하고 선반에 버려져 있다. 지난날에의 향수鄕愁가 향수香水병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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