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말을타고(2012)

수필에서의 ‘변화’를 말하다

온달 (Full Moon) 2015. 4. 16. 08:26

수필에서의 ‘변화’를 말하다                     

-운정 윤재천 선생을 중심으로- 

 

 

석현수 

 

 

들어가며 

 

운정 윤재천 선생 (이하 운정으로 줄임)의 수필에 대한 화두는 언제나 ‘변화’다. 이러한 의미에서 운정은 수필 계에 ‘변화’를 위해 보내온 전령傳令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달을 보라면 달을 보아야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쳐다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서 필자는 운정이 가리키는 ‘변화’의 본의本意가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1. ‘변화’ 모티브

문학에서 변화에 인색한 모든 것은 소멸될 수밖에 없다.① 그것은 창조적 의지가 결여된 상태이고 대중의 기대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머물러 있는 것은 곧 썩는 것을 의미한다. 운정은 때로는 진리라 생각하는 것마저도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며, 심지어는 자신의 ‘변화’에 대한 생각도 같은 맥락에서 언제든지 다른 의견을 기꺼이 수용할 태세로 살아간다. 이는 세상의 모든 것은 지속적인 변화를 통해서만 창조적 발전을 할 수 있다는 헤겔의 정반합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  

 

2. 변화 방법

운정의 ‘변화’에 대한 방법은 전위적이면서도 점진적 변화의 아방가르드 방법이며, 메타를 지향하면서도 기존의 문학에 대한 비판과 극단적 무시보다는 새로운 문학을 구축하기 위한 변화의 한 방편으로서 메타를 택하고 있다.  

 

가, 아방가르드 수필

Avant-Garde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기존의 형식을 부정하고 새로운 예술 운동을 주도한 시대 경향으로서 당시에는 예술을 우리의 삶 속으로 전이轉移시키려는 노력이 만연했다. 우리에게는 ‘전위前衛’라는 말로 알려진 이 말은 곧 시대보다 앞서 가는 문화예술을 뜻한다. 시와 소설은 일찍이 이러한 시대조류를 따라 그때그때 변모해 왔지만 유독 수필에서만은 고답적이고 관조적이고 도덕적인 경향을 지키려다 보니 타 문학 장르보다 뒤져 있다고 보았다. 운정의 아방가르드는 원래 어원이 가지는 혁명적이고 급진적인 ‘전위’가 아니다. 정체보다는 새로워져야 한다는 대명제②가 있어 위험하지 않다. 무조건 기존의 것을 허물고 새로운 것을 세우고자 함이 아니라 기존의 것에 진취적이고 전위적인 방법으로 수필의 지평을 넓혀 가고자 함이다. 이는 옛것은 익히며 새로운 것을 도입해 나가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변화로 보아도 무난할 것이다.  

 

나. 메타 수필

메타 문학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양식으로서 고답적인 형식에 대한 반동으로 대두한 문학이다. 메타는 시나 소설, 수필이나 비평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하거나 통합하려는 새로운 문학의 한 양식이다. 운정의 메타는 긍정적 의미에서 이단자③가 되지 않으면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긍정적 의미란 기존 문학관에 대한 반기적叛起的 성향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에 갇힌 호랑이보다는 길들지 않은 야생호랑이처럼 마음껏 뛰고 자신의 기량을 시험해 보는 작가정신을 요구하고 있다. 문학적 작품성을 높이기 위해 소설의 허구를 수용할 용의를 가지며, 시의 함축적 이미지 사용을 주저하지 않는다. 문학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때로는 거짓이 진실보다 나을 때가 있다고 주장한다.  

 

3. 변화의 실체

운정의 ‘반추상수필’이나 ‘마당수필’, ‘퓨전수필’ 등은 고답적이고 구태의연한 수필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체적인 변화 모습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가. 반추상半抽象 수필

그림에서의 피카소나 조각에서의 자코메티 같은 비구상의 작품들을 염두에 둔 개념이다. 미술에 견주어 추상화와 구상화의 중간 성격의 그림과 같은 수필이라 할 수 있겠다. 기존 수필의 특징이라 볼 수 있는 감성感性과 구상적具象的 소재에서 발아發芽된 글은 이제 한계에 봉착해 있어 새로운 영토의 확장이 필요하다. 수필도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으면 바다 한복판에 감금된 섬의 모습과 같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새로운 변화를 위해 타 예술 장르의 비구상 같은 모양의 수필 쓰기를 권하고 있다.  

 

나. 마당 수필

마당놀이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독특한 놀이 문화다. 마당놀이에는 배우와 관객이 하나가 된다. 무대도 한 단 높은 것이 아니라 평평한 마당에서 함께 어울려 웃고 춤추는 화합마당이다. 그런 점에서 수필이 독자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서는 길을 우리의 전통 마당놀이 방법에서 찾아본 것이다. 수필이 한 단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눈높이에서 각기 다른 나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마당놀이를 하듯 ‘얼~쑤’ 장단으로 추임새를 넣어갈 때, 수필도 대중 속으로 파고들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다. 퓨전 수필

‘퓨전’은 넓은 의미의 ‘만남’을 뜻한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뿐만이 아니라, 다른 장르와의 만남도 ‘퓨전’이다. 이러한 방법은 다른 장르의 문학, 즉 시나 소설에서는 일찍부터 횡횡하고 있으나 유독 수필에서만 구태의연한 모습을 고집하고 있음을 운정은 개탄했다. ‘퓨전’이란 기존의 것이 지니고 있던 것을 부정하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접목④시켜 창조적인 글쓰기를 도모하자는 것이다. 담을 허물면 내 울안을 침범당하는 것이 아니라 담 바깥까지 내 마당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수필 영역의 경계를 허무는 일은 곧 수필의 지평을 확대하는 것이라 보았다. 그림 또는 시와 융합된 수필 등이 그 예가 되겠다. 

 

4. 발전적 변화 방안 모색 

 

가. 먼저 기반을 튼튼히

발전적 변화를 위해서 운정은 수필 쓰기의 기반부터 튼튼히 해 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천 개의 계단도 첫 번의 발걸음을 내 딛는 것으로 시작되듯, 기본을 무시한 획기적 시도는 혼란을 가져올 뿐이라고 했다. 수필 공부는 습작기의 성실함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 가면서 자기 수련을 하지 않으면 이는 곧 급조된 부실공사로 붕괴 위험이 있는 건물에 비유된다고 했다. 추사 선생도 천 개의 붓을 닳게 하고 열 개의 벼루를 구멍 내면서 글씨 연습을 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부단한 노력을 촉구한다. 수필도 자신만의 향기를 뿜어낼 때까지 오랜 시간 숙성의 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운정의 주장이다. 

 

나. 자기 길 찾기

우리에게 남은 값진 세계는 누구에 의해서도 발견된 곳이 아닌 새로운 영역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본질적으로 정서가 다르고 오감五感에서 우러난 향취 또한 다르므로 각자는 개성 있는 자기 글을 써 나가야 한다. 끊임없이 새롭기 위한 자기 탁마⑤를 계속하지 않으면 작가의 생명은 끝이다. 작가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초월超越’ 즉 정형화된 틀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일일 것이다. 운정은 실험수필을 자기만의 길 찾기의 대안으로 내놓으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작가는 누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그 무리 속에 끼어들어 헤매기보다 자기만의 길을 찾아 독특한 브랜드의 세계를 구축하여야만 비로소 영주領主의 지위를 확보하여 영지領地를 다스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소임을 위탁받아 관리하는 하수인에 불과할 것이라고했다.  

 

5. 스스로 ‘변화’해 오다

변화를 말하는 사람일수록 가장 변화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라에서는 정부 관료들이 그러하고, 기업체에서는 사장이 그러하다. 정작 변해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이면서도 되레 다른 사람의 변화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운정에 있어서 ‘변화’는 곧 그의 ‘생활’이다. 그는 머물러 있다는 것은 퇴보로 보았다. 운정은 우리나라 최초의 수필학 학자이면서도 또한 원로 수필작가다. 주지하다시피 그가 달고 있는 최초라는 말은 수없이 많다. 선도적이고 진취적인 삶을 살아온 운정은 이 분야에서의 ‘변화’를 추구해온 개척자였기에 그의 업적들은 모두 새롭고 낯선 것이어서 늘 ‘최초’라는 접두어를 붙이고 있다. (가) 수필의 날 제정, (나) 아방가르드적 수필 쓰기, (다) 대학 정규 수업과목으로 수필학 개설, (라) 수필학, 수필론의 집대성 등을 열거할 수 있다. 모두가 '변화'를 앞장서 온 운정의 열정의 산물이다.

또한 운정은 작품 활동 중에서도 스스로 변화를 주저하거나 마다치 않았다. 수화집隨畵集 출간이나, 수필에 관한 아포리즘Aphorism 등에 대한 생각은 본인이 제시한 이론을 작가로서 솔선수범해 보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수화隨畵는 만화를 좋아하는 젊은 독자들을 위해 그림을 수필에 융합시켜 보려는 실험이었으며, 아포리즘은 길고 장황한 문장에 싫증을 내는 현대인들의 취향을 간파하여 경구나 잠언 형식을 수필에서 빌려보려는 시도인 것이다.

운정의 변화의 끝은 아무도 예단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의견은 주장하되 자기 것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다른 이의 의견일수록 경청하고 살펴보는 관대함이 있다. 새로운 것은 반대에 부딪히기 마련이고,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라야 좀 더 가까이 정답으로 접근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에게는 “나만 옳다.”라는 아집에 사로잡히는 법이 없어서 본인의 주장도 어디까지나 정반합正·反合의 연장선상에서 하나의 ‘변화’로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나가며 

 

아방가르드 수필/ 메타 수필/ 마당 수필/ 반추상 수필/ 실험 수필 등 여러 용어의 공통분모는 모두 ‘변화’였다. 운정의 역할이 이 분야에 수필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이었다면 후학들은 더 큰 ‘변화’로 변화의 실체를 보여 줄 차례다. 그가 가리키고 또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운정의 손가락이 아니라 ‘달’이다. ‘변화’라는 주문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見脂忘月〕  

 

① 윤재천 『수필문학 전집 1권』, (서울: 문학관, 2008.) 282쪽

② 윤재천 『윤재천 수필론』, (서울: 문학관, 2010.) 106쪽

③ 윤재천 『퓨전수필을 말하다』, (서울: 소소리 2011) 89쪽

④ 앞의 책 181쪽

⑤ 위의 책 『윤재천 수필론』, 318쪽

 

《수필세계》(2011) 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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