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꽃보다개(2013)

잉어가 있는 풍경

온달 (Full Moon) 2015. 4. 16. 14:57

잉어가 있는 풍경 

 

석현수 

 

 

낚시꾼들은 과장이 심하다. 놓친 고기는 늘 월척이다. 내가 이들의 흉내를 내 본다 해도 적어도 성남시 탄천에서만큼은 크게 거짓말은 아니 될 것이다. 정자역에서 미금역 사이의 개천에는 물 반, 고기 반이다. 이곳은 탄천 잉어의 세거지여서 팔뚝만 한 놈이 아니면 잉어 축에도 들지 못한다. 나이가 좀 들었는지 놈들은 모두 수염을 달고 근엄한 모습이다. 어슬렁거림이 가히 민물고기 중에서는 양반 중의 양반이다.

이들은 물살을 가르며 올라간다. 밤새 안녕했느냐는 듯 꼬리를 흔들며 인사를 한다. 우두머리를 따라 무리를 지어 상류로 오른다. 모선 옆에 자선 여럿을 붙여가는 한 무리의 군함을 보는 듯하다. 종대로 열을 지우다가도 얼른 횡대로 대열을 넓히기도 한다. 자부심이 대단한 모습이어서 그 여유로움이 실로 부럽다. 해가 솟으면 비늘은 광채를 번쩍번쩍 내뿜는다. 신선하다는 느낌이 든다. 벼슬아치들이 잉어의 덕목을 강조하면서 수묵화를 그리던 이유가 이것이구나 싶어진다.

하늘로 높이 뛰는 잉어가 그려진 그림을 약리도躍鯉圖라고 한다. 이는 잉어가 용으로 변하는 그림이라는 의미에서 어변성용도魚變成龍圖라고도 부른다. 삼진기三秦記라는 책에 용문龍門의 잉어 이야기가 실려 있다. 곤륜산에서 흐르는 물은 적석산을 통하고 나서 용문폭포에 이르고 이 폭포 밑에는 해마다 봄이 되면 수천만의 잉어들이 모여와서 서로 폭포를 뛰어넘는 내기를 한다. 폭포를 뛰어오른 잉어만이 용이 될 수 있었으니 지금의 등용문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한단다.

어려운 가운데 고시에 합격한 사람을 향해 흔히들 ‘개천에서 용 났다.’고 말한다. 탄천은 기울기도 크지 않을 뿐더러 장마가 아니면 큰물 구경도 어려운 개천이다. 잉어가 날개를 달고 용솟음쳐 하늘로 올라 볼 그런 곳이 못된다. 용은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동물이어서 그림 속에만 볼 수 있다. 용 그림에 수염을 길게 그려 넣는 걸로 보면 이들의 원조가 개천에 놀던 잉어임이 틀림이 없으리라.

물고기 노는 것을 보고 즐기는 사람은 위장병이 없단다. 잠시 보고 가리다 하고 걸음을 멈춘 것이 아차 하는 사이에 잉어 삼매경에 빠져든다. 얼쩡거리다 보면 어느새 반 시간이 후딱 간다. 잉어의 유연성을 보고 있는 동안에는 세상만사를 잊어버릴 수 있어 좋다. 개천을 내려본다는 것은 훌륭한 소화제다.

모든 놈이 강 상류로 올라가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다음 날 아침이면 어제 그 자리로 돌아와 있다. 산을 오른다고 산에 살러 가는 것이 아니듯, 놈들은 인적이 뜸해지면 모두 하류로 다시 내려오는 것 같다. 민물고기에 속하는 잉어는 멀리 가지 않는단다. 열병과 분열은 어디까지나 시위용인 듯 광화문 수문장 교대식처럼 볼거리다. 물 반 고기 반인 탄천에 용 꿈꾸는 잉어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탄천 둔치에 만들어 놓은 강변 산책길은 어디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다. 시민들은 잉어를 보고 잉어는 탄천에 비치는 인간들을 보며 즐긴다. 나이 듬직한 신사 한 분이 잉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잉어는 먹성이 좋아서 탄천에 있는 프랑크톤을 싹쓸이하기 때문에 다른 물고기들을 서식하지 못하게 한단다. 대자연의 먹이사슬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달을 몇 마리 서식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눈을 감고 상상해 보았다. 수달이 잉어를 물고 있는 모습이 마뜩잖다. 천적으로 잉어를 다스릴 바에야 볼거리가 없는 가난한 시골 천변으로 이동시켜 주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천당 아래 분당이라 자랑 할 때는 언제였던가. 이분의 마음 씀씀이가 천당하고는 한참 멀었다.

유유히 떼 지어 오르는 잉어들을 본다. 먹이를 찾고 번식이나 하다 보니 평화로움에 잘 길들어서 유유자적의 모습이 보는 이를 마음 편하게 해 주고 있다. 머리를 싸매고 용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을 젊은이를 떠올린다. 과연 얼마가 등용문을 뛰어넘어 용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세상을 지배하려 올랐다가 오히려 세상에 더 잘 길드는 수재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세간을 어지럽게 뒤흔들어 놓았던 용들 말이다.

용문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탄천에서 사는 잉어들이 부럽다. 저 왕성한 번식력과 식욕을 닮은 원초적 욕심을 부리고 싶다. 예사로움 속에서 필부필부들이 부창부수하고 살아가는 편안한 모습 같아서 좋다. 지금 이 시간에도 등용문을 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을 젊은이가 한번 보아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큰 그림만 그리며 살다가 실의에 빠진 이들도 위로를 받을 것이다. 적어도 수달을 모셔오기 전까지는 탄천은 잉어 떼 덕분에 한동안 평화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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