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과
석현수
사과 한 상자를 보내왔다. 웬 과일이냐고 물었지만 전하는 이의 답이 신통치 않았다. 과수원에서 제대로 상품이 못 되어 나누어 먹는 것이란다. 아마 며칠 사이 몰아쳤던 비바람에 낙과가 많이 생겼던 모양이다. 하나같이 상처를 입은 것들이라 판매용으로는 힘들겠지만, 집에서 먹기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수확을 눈앞에 두고 예상이 빗나가 버린 농부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70년대 태릉에 살았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나는 바구니를 들고 배 밭으로 갔다. 밭에는 수북하게 쌓아놓은 배가 보였고 그 옆에 주인아저씨가 비워낸 소주병이 즐비했다. 떨어진 과일 몇 개를 팔아 드리겠노라며 바구니를 내밀어 아저씨의 부아를 돋게 했던 적이 있었다. 상처가 크면 돈을 들이댄다고 해서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님을 그때 알았다.
성탄절은 겨울 태풍이다. 연말연시의 광기 또한 천재지변이 되어 젊은이들을 휩쓸고 지나간다. 신자가 아닐수록 더욱더 제정신이 아니다. 공연히 마음이 들떠 거리를 나서고, 광란의 질주를 하고, 상인들은 성탄절 대목 특수를 노린다. 젊은이 마음은 하늘로 날고 연인은 꿈속에서 헤맨다. 혼란의 끝을 알 수가 없어서 그리스도를 뜻하는 희랍어 X는 그 본뜻을 이탈하여 걷잡을 수 없는 미지수 X로 변해버린다.
X-mas의 들뜸 속에서 아우는 하나뿐인 아들을 잃었다. 도시의 광기가 금쪽 같은 아이를 휩쓸어 가 버린 것이다. 새벽녘 2시 귀갓길, 과속으로 달리던 영업용 택시가 아이를 치었다. 스물아홉의 청년이 낙과되어 길바닥에 내동댕이친 날이다. 비명횡사 직전에서 목숨은 부지했으나 3년이 지난 지금에도 식물인간으로 병상에 누워있다. 오랜 병상 생활에 지친 나머지 이제는 위로의 말도, 어지간한 도움도 소용이 없어진 듯 자포자기의 모습이다.
아우의 자식 사랑은 유별났다. 하나 아들을 두어서가 아니라 어릴 때 형제가 많아 풍족하지 못했을 부모님 사랑을 자식 사랑으로 대신해 아이에게 쏟아 부었다. 자식농사를 잘 지었다는 칭송을 많이 들었다. 기골도 장대하며 얼굴은 또 얼마나 잘생겼던가. 곧 짝이라도 찾아주고 싶었을 아우의 꿈은 한껏 부풀어 올라 있었을 것이다. 수확을 눈앞에 두고도 태풍이란 모진 놈을 만나면 일 년 농사는 헛농사가 되고 만다. 결승점을 눈앞에 두고 중도 포기해야 하는 육상선수가 이보다 더 허탈할까? 가을은 쉽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으로서 할 일을 다 한 다음에 하늘과 땅의 조화를 기대한다고 했던가.
여름 햇살을 잘 받은 낙과가 병석에 누워 있는 조카의 두 볼처럼 발그레하다. 농부의 고통이 아우의 한숨과 섞이어 집으로 배달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과 값을 돈을 쳐서 보내기가 어쭙잖은 것 같아 성의만 받아주기로 했다. 가을이 오기 전에 달아나 버린 수확의 꿈, 다 키워 놓은 자식을 버린 부모의 애를 끊는 아픔이 여진餘震처럼 낙과 상자에 담겨져 있다. 낙과는 아우의 눈에서 떨어지는 빨간 눈물이며 미완으로 끝나버린 농부의 아쉬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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