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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필문학 <枕草子> 마쿠라노소시 A.D. 1000 년

온달 (Full Moon) 2017. 1. 5. 18:06



마쿠라노소시 (まくらのそうし枕草子)


마쿠라노소시 (まくらのそうし枕草子)는 일본 수필 문학의 효시로 보는 작품들이다.  11세기 초 淸少納言(세이쇼나곤)’이라는 궁녀가 궁중 생활을 하며 보고 듣고 체험한 일, 자연과 인생에 대한 감성등을 자유로운 문체로 써 내려간 수필이다. 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세심한 관찰, 기발한 착상, 절묘한 묘사, 명쾌한 문장이 재미와 공감을 이끌어 낸다. 지면 관계로 <꽃나무는>,<얄미운 것>등은 다음 기회로 소개를 미룬다.




사계절마다의 정취 (四界それぞれの情趣)


 봄은 새벽. 산너머 하늘이 서서히 동이 트면서 어슴푸레 밝아져 오고. 보랏빛 구림이 가늘게 걸려있는 풍경이 멋지다.

 여름은 밤, 달이 뜰 무렵은 말할 것도 없고, 어두운 밤조차 멋잇다. 반딧불이 날아다니는 광경도, 불과 한 마리인가 두 마리인가가 희미하게 빛을 내며 날아가는 것도 정취가 있다. 비가 내리는 밤마저 좋다.

 가을은 해질 녘. 석양이 비추면서 산자락 가까이 다다랐을 때. 까마귀가 둥지로 돌아가려고 서너마리. 두세 마리씩 서둘러 날아가는 모습마져도 깊은 정취가 느껴진다. 게다가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가 조그맣게 보이는 것은 정말 멋지다. 날이 저물어 바람 소리나 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정취가 깊다.

 겨울은 이른 아침. 눈이 내린 아침은 말할 것도 없고. 서리가 새하얗게 내린 것도 멋지다. 또 무척 추울 때 불을 급히 피워 숯을 들고 지나가는 모습도 겨울에 어울린다. 오후가 되어 추위가 점점 풀리면 화롯불도 하얀 재가 눈에 띄어 좋지 않다.



귀여운 것 (かわいらしいもの)

 

귀여운 것. 참외에 그린 아기 얼굴. 사람이 쥐 소리를 흉내 내 부르니 아기 참새가 폴짝 폴짝 춤추듯 다가온다. 두세 살 정도 된 아기가 막 기어오다가 아주 작은 먼지가 있는 것을 재빨리 발견하고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집어서 어른들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너무도 사랑스럽다. 단발머리를 한 여자 아이가 머리카락이 눈을 덮었는데도 쓸어 올리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살짝 고개를 기울인 채. 뭔가를 보고 있는 것도 정말이지 앙증맞다.

몸집이 크지 않는 동자가 옷을 잘 차려 입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도 귀엽다.

사랑스런 아기가 잠깐 안아서 어르고 놀아주는 사이에. 안긴 채 잠든 모습도 실로 사랑스럽다.

병아리가 긴 다리에 하얀 앙증맞은 모습으로 옷을 짧게 입은 듯 모양새를 하고 삐악삐악 시끄럽게 울면서 사람의 앞뒤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것도 귀엽다. 또한 어미 닭이 병아리를 데리고 뛰어다니는 모습도 모두 귀엽다.

 


부러워지는 것 (うらやましいもの)

 

마음먹고 신사에 참배 갔을 때. 안쪽 경내에 다다른 곳에서 몹시 힘겨운 것을 참아가며 오르막길을 올라갔는데. 전혀 힘든 기색 없이. 뒤에 오는구나 싶던 사람이 휙휙 앞질러 가서 먼저 참배하다니. 부러울 따름이다.

2월 오()일 새벽에 서둘러 집을 나섰는데도. 고갯길을 반쯤 올라가니. 벌써 10시 정도가 돼 버린 것이다. 게다가 점점 더워지면서 도저히 힘들어서 참을 수가 없는 기분이 들어. ‘이런 더운 날 말고 좋은 날도 있으련만 어째서 오늘 이렇게 참배를 왔나하고 눈물을 흘렸다. 한숨 돌리며 기진맥진해 있는데 마흔 살이 좀 넘은 듯한 여자가 외출용 정장은 아니나 그저 평상복의 소매를 걷어 올린 차림새로 저는 일곱 번 참배할 생각이에요. 세 번은 이미 마쳤고 이제 앞으로 네 번만 더 하면 되니 그건 일도 아니죠. 두 시쯤에는 틀림없이 산을 내려가 있을 거예요라며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말하며 고갯길을 내려가는데. 보통 다른데서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소소한 일이 이때만큼은 당장 그 여자가 되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흥이 깨지는 것(ざめなもの)

 

조정의 지방관 임명 때에 관직에 오르지 못한 사람의 집은 썰렁하기 그지없다. 올해는 틀림없이 임명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예전에 이 집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다른 곳에 일하고 있는 사람이나. 변두리에 살고 있는 사람 등이 모두 몰려오다 보니. 들락날락하는 소가 끄는 수레들의 채도 빈틈없이 빽빽하게 보이고. 임관을 위해 절이나 신사에 참배하러가는 주인을 따라서 저 요 저 요 하고 앞 다퉈 서로 모시고 가겠다고 나서는 와중에.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왁자지껄한데. 임관 심사가 끝난 새벽녘까지 임관 결정을 알리는 이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나지 않는다.

정말로 주인의 임관을 고대하던 이들은 너무 실망이 컸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빈틈도 없이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하나 둘 슬며시 자리를 뜨고 만다. 오랫동안 모시어 그마저도 쉽사리 자리를 뜰 수 없는 이들은 내년에 관직이 비는 지방들을 손꼽아가며 숫자를 헤아리거나 하면서 그 주위를 어슬렁어슬렁 댄다. 그 모습도 처량해서 흥이 깨지지 마련이다.

 

 

세상에서 제일 괴로운 일은 (一番つらいことは)

 

세상에서 누가 뭐래도 역시 가장 괴로운 것은 다른 사람에게 미움 받는 일일 것이다. 대체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자기는 남에게 미움을 사고자 생각했겠는가. 하지만 자연적으로 일하는 곳에서. 사랑받는 사람과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구분 지어지는 것은 정말로 괴로운 일이다. 신분이 높은 사람의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신분이 낮은 사람의 경우에도 부모가 사랑스레 여기는 자식은 주위 사람들로부터도 주목을 받고 귀 기울이여 주며. 귀하게 여겨지는 법이다. 돌본 보람이 있는 자식이라면 부모가 어여삐 여기는 것도 지당한 일이며. 어찌 사랑스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고 여겨진다. 또한 딱히 잘하는 게 없는 자식이라도. 그런 자식을 부모이기에 귀여워하는 마음은 절실히 느껴진다. 부모에게든. 주군에게든 또한 교제가 있는 상대 모두에게.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일만큼 멋진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