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탓보다 내 탓이 먼저다
조선왕조실록에의하면 가뭄이 들어민심이 숭숭해지면 나라님
은 이를 본인의 부덕한 탓으로 생각하고 천지신명에게 고하여 용서
를 빌었다. 터무니없는 샤머니즘으로 보이지만 그땐 그랬다. 임금은
천자天子라 자칭했으니 이는 곧 하늘에서 내려온 자식 체면 좀 차릴
수 있도록 비 내리게 해달라는 간청이다. 당신이 비를 고르게 내리
지 못하여백성들이고통을받고있으니먹고살도록해달라며 떼를
쓰는 일이다. 용케도 기우제 끝에는반드시 비가 왔다. 한달이고 두
달이고 비가 올 때까지 엎드려 빌었으니 비 오는 날이 곧 기우제를
마치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난해는 겨울 가뭄이 초여름까지 뻗치어 모내기가 어려웠다. 대
구의 식수난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운문댐 물은 바닥에
머물고 있다. 다행히 조정의 대신들이 나서서 기우제를 지내 달라는
주문은 없었다. 어지간한 기상용어는 꿰차고 사는지라 가뭄이 대통
령 통치하고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대통령은 천자의
자리가 아니라 목 터져라 연설하고 손발 닳도록 악수해가며 어렵사 72
리 얻어낸 자리다. 하늘의 아들인 천자도 아니고 해야 할 일도 태산
인데기상청일기예보관 역할까지할수 있겠나. 숫제 해낼 수없는
일까지 ‘네 탓이요’ 한다면 누가 대통령 하랴. 강단剛斷있는 한 분이
“이 짓도못 해 먹겠노라.”라고푸념했던일이 세간에알려지기도 하
지 않았던가.
천자를 대신한 지금의 나라님이 무엇을 해야 할까? 가뭄에 기우
제를 지내도 나의 효험은 없다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가뭄에는
절수 운동을 벌이고 홍수 때는 수해 복구를 독려하고, 대형 산불에
는 군관민의 힘을 동원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일
의 일부다. 이런것조차되지않을 때는‘네 탓’이될 수있을 것이다.
백성이 아프면 나라님도 아프다. 홍제전서弘齋全書(정조의 문집,
1799년)-‘'民飢即予飢民飽即予飽’(백성이 배가 고프면 곧 내가 배
가 고프고 백성이 배가 부르면 곧 내가배부르다). 국민이슬프면 대
통령도 같이 슬프다. 조선의 성군은 국사를 볼 때 일부러 딱딱한 나
무 의자에 앉았다고 한다. 방석 살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푹신한 방
석에 앉아 잠이 오는 몽롱한 상태에서 집무를 하지 않았다. 임금도
늘 백성과 같이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서 드러낸 위정자들의 국정 수행 능력에 노여워했던 지난날을 기억
한다. 국정 수행 능력이 부족해 ‘네 탓’이 컸다. 아픔을 같이하지도
못했고, 상처를 보듬고 안아줄 넓은 가슴도 없었다.
나라의 가장 큰 임무는 국민의 안전과 권익 보호다. 국민은 국가
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어려울수록 국민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기쁨과 아픔을 같이해야 한다는 표현이 더 좋겠다. 근간의 일
련의 사고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예전과는 달리 그때마
다 높은 분들이 다투어 현장으로 달려가 현장에서 아픔을 같이하는 73
모습을 보여주었다. 격세지감이다.
가뭄, 홍수, 지진 등은 자연재해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네 탓’이라며 나라를 향한원망이 끊이지 않을까? 그것은 자
연재해를 관리하는 능력이 부족해서다. 사전대비로 유비무환을 만
들지 못했고, 사후처방으로 소 잃고 외양간을 잘못 고쳐 다시 소를
잃었기 때문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았기 때문에 대
부분 자연재해의 이면에는 이를 키운 인재人才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탓보다는 네 탓이 컸다.
재해의 복구라는 것은 돈이 따라야 하니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
다. 그러나 어떤 이유라도 이재민들의 기본 삶은 신속히 유지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절망에서 일어서는 일은 개인의 능력일지 몰라도,
연명해야 하는 생존권 보장은 국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일이 있을
때마다 정부 요인들이 부리나케 달려가는 것을 보고 있으니 이제는
제대로 되어 가는 것 같아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재해구역
선포 이후의 조치들이 신속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불편함을 호소
하고 있다. 정부의 귀가 어두운 탓이겠지.
천재지변은 지도자의 ‘부덕의 탓’이 아니다. 모 국회의원이 지진
현장을찾아가이번사태는대통령이 천벌을 받는 거라며선동을 하
다가 크게 망신살이 뻗쳤다. 이런 일에 지도자를 끌어들여 ‘네 탓’이
요 하다니. 이것은 오히려 국회의원의 실점이다. 그러나 상당한 시
간이 흐른 이후 이뤄진 사후 대책은 느려터졌다. 이럴 때 오히려 늦
장 대응을 강하게 성토했다면 당찬 일꾼이라며 박수갈채를 받았을
것이다.
사고는 하나같이 평소의 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난감한 상황이
된다. 대형화될수록 국가도 능력이 없다. 이럴 때 뒷감당해줄 장치 74
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보험이다. 지금은 보험이 나라님보다 낫다.
보험은 하늘과 내통해줄 천자 역할이다. 농민은 농업 보험으로 사업
자는사업자보험으로집가진 자는주택보험으로 삶의 안전장치를
해둘 때이다. ‘네 탓’ 해도 소용없다. 평상시에 이에 대비하지 못했던
‘내 탓’밖에 없다. 지진만 해도 그렇다. 우리도 이제는 지진 안전지대
가 아니다. 앞으로 지을 건축물에 내진 설계를 의무화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지금 사는 내 집을 주택 보험에 드는 일은까맣게
모르고 있다. 설마 내가 사는 곳에 지진이 있겠느냐는 안일함 때문
이다.
도시의 생활을 보자. 보험이 생활화되었다. 자동차는 자동차보험
으로, 우리 몸의 건강은 의료보험으로 예기치 못한 병에 대비한다.
자동차가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 자동차 보험을 들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사고가 나면 울고불고하는 것 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었다.
책임보험이 생기고 거기에 대해 맞춤형까지 생겨나니 교통사고 한
번에 살림을 거덜 내는 일은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매달마다 지출해
야 하는 일정의 보험금 부담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건강도 마찬
가지다. 병에 걸려도 의료보험에 가입이 되어있기에 큰 걱정을 덜고
산다.
문제는 도시 사업장보다 자연재해가 빈번한 농촌이다. 재해가 일
어나면 농민은 속수무책이다. 정부는 보험회사가 아니다. 정부 살림
은 열악한 농민들을 책임져주는 곳이 못 된다. 설령 재난지역으로
선포한다 해도 피해를전액 보상해 준다는 선포가 아니다. 기껏해야
세금을 나눠서 내거나, 낮은 이율로 은행 대출을 받는다거나, 공터
에 임시 천막으로 눈비를 피하게 하는 정도다. 온정의 손길로 모여
진 구호품이나 생수나 라면 등이 고작이다. 75
농사일도 점차 기계화되고 사업화되어가고 있다. 자본이 투입되
고 기업화가 되면 도시의 사업장과 다를 바 없다. 사과 수확기를 앞
두고 우박 피해를 보아 과일을 못 쓰게 되었다. 태풍으로 비닐하우
스가 다 날아가 버렸다. 딸기밭이 폐허가 되어버렸다. 배추가 가격
폭락으로 인해 배추를 쟁기로 갈아엎어야 한다. 공장도산으로 공산
품 생산설비 문을 닫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업하는 사람이 보험이
필요하듯 농촌에도 보험이란 제도를 활용해야 한다. 불행에 대비하
는 일에농사도예외가 될수 없을것이다. 폐허가 된논밭을 바라보
며 한숨을 쉬고, 하늘만을 쳐다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손 안에 든 한 마리 새가 숲에 있는 많은 새보다 낫다는 격언이
있다. 어쩌면 ‘네 탓’에 속하는 많은 것들은 숲속의 새처럼 급할 때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각 개개인이 자신을 위해 안전장치를
하지 않으면 국가도 일일이 나서서 안전띠를 매어주지 못한다. 툭하
면 나라나 탓하거나 조상을 원망하고 신세타령하며 주저앉던 그런
때가 있었다. 세상에 믿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맑은 날에 비 올 때 쓸 우산을 마련해두자. 집에
우산이 없는 것은 ‘네 탓’이 아니라 ‘내 탓’이다.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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