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모음/운문

세월 앞지르는 발길

온달 (Full Moon) 2020. 2. 11. 19:25



세월 앞지르는 발길

                            佳谷/金淵湜

 


재촉비가 내려

어름 녹인 물이 실개천을 만들고

동면에서 풀린 꽃망울이

톡톡 소리 내며 터지는 날

매미 울음소리 요란한 느티나무 아래서

지난날 아쉬운 기억이 되살아

후딱 낮잠을 깨어 이마의 땀을 닦고

 

여름


올챙이가 연잎을 갉아먹고

연잎에서 청개구리 낮잠을 자는 날

임 부르는 뻐꾸기 산울림 메아리에

하늘거리는 호젓한 코스모스 길

폭포수에 빨간 단풍잎이 떨어지고

여치 귀뚜라미 소리에 잠 못 이루는 밤

 

가을

코발트 빛 하늘에

빨간 단풍이 낙엽에 불 지른 날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한겨울

하얀 설산을 오르는 꿈을 꾸고

갈대밭 억새꽃이 흰 물결치고

기러기 떼 하늘을 가르며 떠나던 날

또다시 함박눈을 밟는 영상이 다가와

언제나 한 세월 앞서가는 착각에

가는 길을 재촉하는 데

 

겨울


꽁꽁 얼어붙은 하얀 눈 위에

외로운 발자국을 꾹꾹 찍던 날

눈사람을 만들고 썰매를 타는

개구쟁이들의 신바람 나는 모습에서

또다시 버들강아지 눈웃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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