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앞지르는 발길
佳谷/金淵湜
봄
재촉비가 내려 어름 녹인 물이 실개천을 만들고
동면에서 풀린 꽃망울이
톡톡 소리 내며 터지는 날
매미 울음소리 요란한 느티나무 아래서
지난날 아쉬운 기억이 되살아
후딱 낮잠을 깨어 이마의 땀을 닦고
여름
올챙이가 연잎을 갉아먹고
연잎에서 청개구리 낮잠을 자는 날
임 부르는 뻐꾸기 산울림 메아리에
하늘거리는 호젓한 코스모스 길
폭포수에 빨간 단풍잎이 떨어지고
여치 귀뚜라미 소리에 잠 못 이루는 밤
가을
코발트 빛 하늘에
빨간 단풍이 낙엽에 불 지른 날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한겨울
하얀 설산을 오르는 꿈을 꾸고
갈대밭 억새꽃이 흰 물결치고
기러기 떼 하늘을 가르며 떠나던 날
또다시 함박눈을 밟는 영상이 다가와
언제나 한 세월 앞서가는 착각에
가는 길을 재촉하는 데
겨울
꽁꽁 얼어붙은 하얀 눈 위에
외로운 발자국을 꾹꾹 찍던 날
눈사람을 만들고 썰매를 타는
개구쟁이들의 신바람 나는 모습에서
또다시 버들강아지 눈웃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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