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는 운다
석현수
매미가 운다, 매미가 노래한다. 새가 운다, 새가 노래한다. 울음이란 슬픔이, 노래란 즐거움이 바탕이다. 비록 미물이어도 울고 있는 심사와 노래하는 마음은 판이할 것이다.
봄날 파란 하늘의 종달새는 즐거운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으로, 저무는 가을 하늘의 기러기 편대는 슬픈 울음소리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나름대로의 추측일 뿐이다.
매미와 의사소통 방법이 없으니 울지도 웃을지도 모른다고 해서 매미가 ‘소리를 내다’로 표현하기에는 죽기 살기로 목청을 돋우는 것에게 너무 밋밋한 대접이다. 사랑노래를 한다면 열렬한 박수를 보내주고 한 맺힌 절규를 하고 있다면 같이 슬퍼해 주어야 할 것 아닌가.
매미 유충은 7년간 땅속에 있다가 지상으로 올라와 성충이 된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보낸 길고 긴 인고의 세월에 비해 날개를 단 이후의 생활은 매우 짧아 열흘 남짓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날개를 다는 일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더욱 높이, 그리고 멀리 날아가기 위해 날개를 단다. 푸드덕 솟구쳐 세상을 날아오르는 순간을 생각해 보라. 우리네 인생에서도 날개를 다는 것 만큼 감격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등단이라는 날개를 자랑하고, 사업하는 이는 사장이라는 날개를 자랑한다. 더 큰 날개를 달기 위해 직장인들은 청춘을 볼모로 일에 미친다. 날개는 생각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것이며 고통의 끝에 오는 최대의 환희다.
성공한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추락하는 신문 기사를 읽는다. 큰 날개가 달린 것은 추락하는 낙폭 또한 커서 한 번 떨어지면 좀처럼 헤어나지 못한다. 올 여름은 유난히 내로라 하던 사람들의 비보를 자주 접하고 있다. 세상 살기가 싫어진 사람들의 아우성까지 매미 소리에 뒤엉켜 환청으로 들리는 소란한 밤이다.
매미는 영원히 살고 싶었을 것이다. 허물을 벗어던지고 시원한 숲 속에서 나 보라는 듯 환희의 노래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매미에게 날개를 달아주면서 겨우 열흘만 살라는 시한부 생명을 준다. 날개란 화려한 인생역전일까, 참담한 슬픔의 표징일까?
매미가 소리를 내는 것은 여름날의 정취요, 암놈이 수컷을 부르는 세레나데serenade라 생각했다. 그러나 미루어 생각하니 이는 신이 준 저주를 서러워하는 미물의 통곡 소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 소리가 마음이 편치 않다. 정작 하루가 아쉽기만 한 불쌍한 것들의 절규를 들으며 인간 군상의 영화榮華와 날개의 덧없음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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