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결심
석현수
새해 각오는? 결심은? 한마디 덕담은? 신년 휘호는? 정초에 가장 많이 듣는 말들이며 이것은 동서양이 크게 다르지 않아 해가 바뀌면 으레 오가는 인사말이다. 타임 잡지에 소개된 내용만 보아도 인생살이가 서양 사람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아 웃음이 나온다. 새해 결심으로는 ‘살 내리기(Lose Weight and Get Fit)’, ‘담배 끊기(Quit Smoking)’가 단연 1, 2위다. 잘해 보겠다는 생각 하나로 세상일이 술술 풀린다면야 얼마나 좋으랴. 그러면 일 년에 한 번 하는 결심보다는 매일 새로운 것 결심해서 일 년에 삼백 개 이상을 이루고 싶지 않겠는가.
새해 결심에 골몰하고 있을 무렵 마침 선반에 놓아둔 상패에서 좋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화평하라.’라는 글귀이다. 이 주장은 직원들과 같이 일해 오면서 내가 오랫동안 그들에게 강조해 왔던 복무지침 같은 것이었는데, 당신이 떠난 후에도 서로 잊지 말자고 돌에 새겨 내게 되돌려 준 것이다. 이 패牌를 받은 지도 어언 스무 해가 넘었지만, 아직도 나는 화평을 이루지 못하고 선반 위에만 올려놓고 살고 있으니 이제는 이것이 나의 주장이었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내게 던져준 인생수업의 과제처럼 부담을 주던 문장이다.
옳거니, 올해는 ‘화평’을 화두로 삼자. 작심삼일이 되지 않기 위해 정초부터 바로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다. 먼저 그동안 불편스럽게 여겨오던 두 사람부터 서둘러 시작했다. 그러나 화평은 말처럼 쉽지 않았으며 내 뜻대로 되지도 않았다. 의도는 훌륭했어도 절차와 방법에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고, 삼일은커녕 이틀도 가지 못하고 스스로 주저앉고 말았다.
제일 먼저 동생네를 방문했다. 오랜만에 마음이 평온을 찾는 것 같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는 또 다른 걱정이 뒤따랐다. 형이 풀어 주었다고 여기면 아우가 똑같이 풀렸을까, 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오히려, 형이 이런 자잘한 속 좁은 생각을 가지고 정초에 쳐들어와 이런 저런 시비를 늘어놓았다며 섭섭해 한다면 전혀 엉뚱한 일이 되지 않겠는가? 감히 형 앞이라 “제 탓입니다, 제 불찰입니다.”라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착한 심성을 가진 동생으로서 치레의 인사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퇴직까지 마친 적지 않은 나이에 나름대로 주장이 있었을 테지만 기꺼이 나를 위해 마음을 비워 보임으로 기쁨을 선사한 것이 아닐까? 형은 화평이란 이름으로 동생을 꾸지람이나 했지만 동생은 화평을 위해 형의 허물을 덮어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 준 것도 없으면서 정초에 불쑥 나타나 동생을 몰아붙이는 꼴이 되지 않았나 싶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비록 혈육 간일지라도 화평이란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다음 날 글 모임의 지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나온 모임에 소홀했던 이유를 해명해 드리고 양해를 구했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허물없이 이야기 봇물을 텄다. 누적되었던 불만 사항들을 토로하고 속으로만 감춰 놓았던 응어리들을 걸렀으니 마음은 이내 화평을 찾았다. 그렇다고 걱정이 말끔해진 것은 아니다. 지회장이 겉으로 “그렇소, 그렇겠소.” 하고는 있지만 나를 이해해 주기보다 오히려 내 말이 변명이나 불평으로 들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차와 식사는 타이밍을 잘 맞추어 내가 대접하는 형식을 갖출 수 있었으나, 얼마만큼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졌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지회장과의 시도도 결국 혼자만의 화평으로 그쳤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신년 결심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화평이란 화두가 오히려 마음의 평화를 깨어버려 바위 덩어리 같은 스트레스로 나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결코, 호락호락한 주제가 아니었음에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일까.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서로 사랑하자’로 할 걸 그랬나 싶었다. 하기야 ‘사랑’도 ‘화평’과는 사촌 간이어서 힘든 목표 선정이 되긴 마찬가지가 아니었겠는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이천 년이란 세월이 넘도록 인류는 그것에 매달리고 있지만 고민하면 할수록 더 지독한 전쟁 즉 사랑싸움을 해오지 않았던가. 남들과 잘 지내고, 평화롭게 산다는 것이 쉬운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비록 혈육이나 이웃 간의 일일지라도 작은 가슴 하나 열기가 어려운데, 어찌 이렇게 큰 주제가 나의 새해 결심이 될 수 있겠는가.
한때 일기예보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일기예보란 뉴스 시간에 거저 덤으로 끼워 넣는 것이다.’라고. 지금은 장비 기술이 좋아 예보가 잘 맞지만, 옛날에는 빗나가기가 일쑤여서 있으나 마나 하다는 식의 핀잔을 받았던 것이다. 새해 결심이 이 꼴이 되어 버렸으니 정초에 한 번쯤 멋으로 내세워 보는 그런 말놀음에 그쳐 버렸다. 제 손으로 큰 장애물을 코앞에 설치해 놓고, 사서 고생을 하다니 긁어서 화를 자초하는 식자우환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 말이 백 번 맞는 말이라 하더라도 나이 들면서 이것이 나의 신년 각오입네 하고 덕담 한 자루 정도 입에 달고 다니며 자랑 삼지 않고서야 어찌 명절을 제대로 쇤다 할 수 있겠는가. 결국, 새해 결심이란 도대체 가져도, 못 가져도 걱정거리로 남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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