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말을타고(2012)

학문에도 볕들 날 있다

온달 (Full Moon) 2015. 4. 16. 08:40

학문에도 볕들 날 있다 

 

석현수 

 

 

학문이라니, 학문學問인가? 학문學文인가? 학문學問은 배우고 익히는 것이며, 학문學文은 『서경』, 『시경』, 『주역』, 『춘추』, 예, 악 등의 시서詩書ㆍ육예六藝를 배우는 일을 말함이다. 외과의사가 간판으로 내건 학문이라는 단어는 사전적인 위 두 가지 의미가 분명히 아닐 것이니 두 번 머리를 굴리기 전에 우리는 그것이 항문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학문을 항문으로 읽는 것은 인접한 두 자음은 ‘ㄴ, ㄹ, ㅇ, ㅁ’ 중의 한 자음으로 바꾸어 소리 내야 하는 자음동화子音同化 현상 때문이다. 발음이 이러하다 보니 ‘학문’으로 써놓고 항문으로 읽어 줌으로써, 항문肛門을 학문의 반열로 끌어올렸다.

수사修辭에 미화법beautification이라는 것이 있다. 듣기 거북한 것을 듣기 좋게 둘러 표현하는 방법이다. 한량閑良이나 양상군자梁上君子가 그러하다. 돈 잘 쓰고 잘 노는 사람을 고급스럽게 한량이라 하지만, 사실은 하는 일 없이 놀고 있는 백수건달白手乾達을 말하며, 양상군자 또한 대들보 위의 군자라는 뜻으로, 도둑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이다.

항문을 아름답게 불러준 사람이 다름 아닌 의사 선생님이라는 것에 놀란다. 건조하고 밋밋한 대화를 일삼는 전문 직업군의 사람이 ‘똥꼬’에 익살스러운 농을 걸어주다니 얼마나 휴머니티가 넘쳐나는가. 우리와 동떨어져 삭막하게 살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던 이들이 오히려 우리 곁으로 먼저 다가와 겨드랑이를 간질이고 있기에 학문외과를 지날 때면 저건 어려운 학문을 하는 병원일 것이라며 이들에게 즐거운 화답을 보낸다.

혁대 아래 부위를 말할 때는 아무리 둘러가도 상스럽긴 마찬가지며, 특히나 앞쪽보다는 뒤쪽이 더 거북하다. ‘똥꼬’라는 말도 귀여워는 보이지만, 이 또한 비속어 군에 속하여 말을 처음 배우는 어린이용이어서 어른들이 쓰기에는 채신머리가 없어 보인다. 이런 차제에 항문에 대한 새로운 학문으로의 발전은 획기적이라 할 수 있겠다.

입은 위에 있어 대접을 받는다. 하루 3번씩, 한 번에 3분이란 구호 아래 양치질을 해주며, 중간마다 민트 향이 나는 껌을 씹어 청량감을 더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아래 것에 대한 배려는 하나도 없어 늘 음지에서 수고해야 하며 철저히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을 강요받고 산다. 일 또한 대중이 없어 자다가도 업무를 수행해야 할 때가 생긴다. 혹자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면서 먹는 일에 목숨을 걸지만, 치질이나 변비에 한 번 시달려 본 사람이라면 먹는 것보다 비워내야 하는 고통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절감切感하게 될 것이다.

큰일을 조용히 치르기 위해서는 거지 대접에 먼저 신경을 썼던 시절이 있었다. 불청객을 한곳으로 모이게 한 후 이들의 배를 먼저 불려 놓아야 행사 진행이 순조로워지기 때문이다. 치질이라도 걸려 엉거주춤한 안짱다리 걸음으로 신사숙녀의 모양새를 구기지 않으려면 허접한 것에 대한 각별한 대접이 먼저 필요하다. 화장실용 두루마리 휴지가 날로 고급화되어 가는 것은 수고하는 아랫것에 대한 각별한 배려다. 여러 색깔의 무늬는 기본이며 장미나 은은한 재스민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엠보싱 처리로 감촉을 부드럽게 한 것도 있다. 현대인들은 ‘똥꼬’ 대하기를 아기 보살피듯 공을 들이는 중이다.

도시의 상수도 국장은 하수도 국장보다 상위 보직이 아니다. 먹는 물이든 먹고 난 오수汚水이건 간에 한쪽 기능이 마비되면 도시가 돌아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아래쪽이라 홀대하려던 하수 국장 자리에 학문이란 새로운 명패를 걸었다. 얼굴 한번 내보일 수 없으면서도 역겨운 것들을 운명처럼 받아 내보내는 것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았으리라.

어렵게 공부해서 의대에 갔는데 온종일 하는 일이 남의 ‘똥꼬’나 들여다보고 사는 사람이라 자조自嘲하기보다는 ‘똥꼬’를 학문의 반열에 스스로 올려 놓음으로써 의사의 품위도 살려 놓고 병원 문턱을 밟는 환자들의 얼굴에도 웃음을 선사해 준다. 학문學問과 학문學文 사이에 학문〔肛門〕하나를 끼워 놓으니 반듯하게 모양 나는 학문외과라는 전문의專門醫가 하나 더 생겼다. 쨍하고 볕들 날 없는 구멍은 세상에 없나 보다.  

    

《영남문학》(2012) 기고  

 

 

 

'著書 > 말을타고(2012)'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孔 과장   (0) 2015.04.16
말〔馬,言〕놀다   (0) 2015.04.16
무섭다고 그리오   (0) 2015.04.16
강남江南콩(?) 콩깍지   (0) 2015.04.16
우린 아니야!   (0) 2015.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