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江南콩(?) 콩깍지
석현수
한번 필이 꽂히면 생각을 되돌려 놓기가 쉽지 않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확인, 재확인하라지만 그것 또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강릉에 수필의 날 행사가 있어 사당역 ➀번 출구에 모여 함께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불행하게도 나는 강남역 ➀번 출구에서 헤매다가 차를 놓치고 말았다. ‘강남’은 제대로 알고 잘 찾아갔으나, 문제는 며칠 전 첫 입력과정에서부터 두 역을 착각했던 것이다.
혼동하려야 할 수 없는 역 이름들이다. 발음도 다르고 지점地點도, 글자 모양도 확연히 다르다. 우리말이 서툰 외국인일지라도 헷갈릴 그런 엇비슷함이 없다. 어째서 칠판에 적어놓은 공지사항이며, 보내준 메일이며, 아침 문자메시지까지 한결같이 ‘사당역’을 ‘강남역’으로 읽고 있었을까? 도둑이 들려면 짖던 개도 잠든다더니.
정상적으로 들어온 빛은 프리즘을 통해 무지개 색깔로 아름답게 분리되겠지만, 처음부터 잘못 입력된 것은 몇 번을 거듭 투시해 본들 난亂반사로 착시 현상만 반복할 뿐이다. 잠들 때도, 다음 날 깨어났을 때도 오직 강남역 ➀번 출구 08:30분을 중얼거리고 있었으니 눈에 강낭콩 콩깍지가 단단히 씌었던 것이다.
망각이 신의 내린 축복이라면, 착각인들 신의 관용寬容이 왜 없겠는가? ‘착각은 자유’라지만 가끔은 이것도 축복이라고 믿고 싶다. 사랑이란 콩깍지는 평생을 눈멀어 살아가게 하며, 행복은 착각 속에서나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굵어가는 장대비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오늘 같은 날은 바닷가엘 가지 않는 거라며 받쳐 든 우산 머리를 부지런히 토닥거려 주었다. 하늘의 위로가 진종일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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