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말을타고(2012)

아래로 흘려보내라

온달 (Full Moon) 2015. 4. 16. 08:52

 

아래로 흘려보내라  

 

석현수 

 

 

          

 

 

 

자식사랑은 내리사랑이다. 내가 그러하고 나의 아버지가 그러했고 아버지의 아버지가 또 그러했었다. 동물적 본능이 새끼 사랑이니 이것은 가르치지 않아도 잘된다. 본능은 타고나는 것이지 교육사항이 아니다. 부모란 어린것에게는 젖줄이며 큰 것들에겐 튼튼한 바람막이며 추운 날에는 달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내놓아야하는 거적 같은 것이다. 부모와 희생은 가지는 뜻이나 속내가 엇비슷하다.

아래에서 위로 거꾸로 받쳐 올리는 것이 효다. 효는 인위적이어서 죽어라 가르쳐도 될락 말락 한 일이다. 자식이 할 도리는 세 살 전에 다 했다고 하니 계산은 벌써 끝난 셈이다. 강보에서 방긋방긋 웃음을 선사할 때 이보다 더 행복한 날이 우리에게 있었던가? 살아 효자는 없다. 자식이란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울어 드림으로써 마지막 숙제를 마친다.

자식은 울타리라고 했다. 그저 마음만 든든할 뿐이다. 울타리가 있다고 해서 비바람이 비켜가는 것도 아니고 도적이 담을 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부모한테서 멀어지는 것은 껍질이나 허물을 벗어던지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일로 알아주어야 한다. 담장이 허술해 낭패인 사람도 있으니 이들은 자식이 있다는 이유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자격을 잃은 홀몸노인들이다. 등 굽은 소나무가 산소를 지키는 것은 옛말이다. 이런 자식은 되레 산소를 어지럽히는 존재이지만 부모는 자식 걱정이 자기보다 앞선다.

자식사랑은 조건 없는 희생이다. 내가 좋아서 했던 일에 무슨 대가를 기대하려는가. 내 자식들은 제 자식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다. 낳아준 부모까지 생각하기엔 이들도 역부족이다. 최고의 선은 물처럼 흐르는 것이다. ‘사랑’을 물이라 풀었다면 위로 올라가는 물은 없다. 희생은 조건 없이 본전 이하로 덤핑했던 것이니 이미 계산을 마친 상태다. 내리 사랑이란 아래로 떠내려 보내는 사랑이다. 기대가 적어야 실망이 적다. 까마귀가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일은 단지 고사에서만 있을 것이다.〔反哺之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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