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말을타고(2012)

꽃구경

온달 (Full Moon) 2015. 4. 16. 08:56

꽃구경 

 

석현수 

 

 

 

 

연말 동창 모임이 달라졌다.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부산한 회식자리보다는 좀 더 색다른 것을 찾아 소리꾼 장사익 리사이틀을 단체 관람했다. 관람객이 초로初老에 있는 동년배 들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시작부터 소리꾼 고유의 슬픈 가락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사랑도 있었고 만남도 있었고 이별의 노래도 있었지만, 김형영 시인의 <따뜻한 봄날>을 노래했다는 ‘꽃구경’이 단연 압권이었다.

고려장高麗葬이란 옛날에 사람이 늙으면 자식들이 산 채로 산에 갖다 버렸다는 설화에서 유래한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 짙어지자/ 아이고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 구경 꽃구경 눈감아 버리더니/ 한 움큼 한 움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하시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 장사익의 노래 ‘꽃구경’ 중에서 

 

높고 깊은 계곡 속으로 꽃구경 가자는 아들에게 업혀가다 아차 이것이 고려장 길이로구나 싶었을 때 어머니는 자신의 죽음을 서럽다 할 겨를도 없이 아들 걱정부터 한다. 집으로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솔잎을 뜯어 길에다 표식을 남기고 있었다.

혹시 이분이 나의 부모님은 아니었을까?

“아버지 병원에 가요. 시골은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시기엔 맞지 않아요. 간호인도 있고 난방도 좋고 음식도 좋으니 병원에서 계시도록 해요.” 애써 모은 돈 좀 쓰고 가시도록 설득을 했다지만 어쭙잖은 말이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한 달도 계시지 못하였고 퇴원한 지 며칠 되지 않아 곧 산으로 모셔야 했다. 아마도 아버지는 솔잎을 뿌리며 산길을 오르셨을 것이다.

“어머니 부산 형님댁에 가요. 시골은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가 계실 곳이 못 되어요. 도시 생활은 병원도 가깝고 며느리 해 주는 밥도 드실 수 있을 테니 어서 시골을 떠나야 해요.” 손때 묻은 가재도구 하나도 챙길 겨를도 없이 정든 집 비우고 등 떠밀려 가신 지 달포 만에 어머니는 싸늘한 몸이 되어 옛 곳으로 돌아오셨고, 우리는 바깥마당에서 상여를 꾸려야 했다. 아마 어머니도 솔잎을 뿌리며 산길을 오르셨을 것이다.

아버지 고려장(1991년) 치르고 3년 후에 어머니를 또다시 고려장(1994년) 치렀다. 더 살 수 있었을 분을 자식이 꽃구경시켜 드린다며 산으로 모신 것이다. 옛사람보다 더 무서운 짓을 했다.

아버지를 위하기보다는 병시중이 어려운 자식의 입장을 살리려 했고, 어머니를 위하기보다는 불효 소리 듣고 싶지 않아서 사시던 고향 집을 떠나시라 했다. 한 분은 등을 밀어 병원으로 내몰았고, 다른 한 분은 집 떠나 임종을 맞도록 했으면서도 마치도 호강이라도 시켜 드릴 양으로 부모님을 팔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당신이 뿌려 주셨을 솔잎 덕분에 인생길에서 헤매지 않고 있습니다. 언젠가 저도 꽃구경을 권하는 날이 온다면 기꺼이 자식 등에 업혀 솔잎을 따는 부모가 되겠습니다.”

‘꽃구경’은 소리꾼의 노래를 넘어 오히려 내가 목청껏 외쳐야 할 깊은 탄식이며 늦은 회한이었다. 설화說話가 실화實話로 변하였다. 눈을 꼭 감고 있었지만, 뺨은 벌써 젖어 있었다. 

 

하나 둘 손수건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숙연한 동창 모임이었다. 

 

《에세이스트》(2012)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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