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소회所懷
해를 보내면서 가장 기뻤던 일이 무엇이더냐고 물어온다.
참 쉬운 것 같은데 그만 머리 속이 하얗게 되어 버린다.
무엇 하나 뚜렸하게 기쁘다고 내세울 것이 없다.
단지 분주했던 일상만이 눈앞에 어른거릴 뿐이다.
그렇다면 다시 가장 마음 아팠던 일을 말해 달라는 요청이다.
여전히 답 거리가 신통치 않다.
슬퍼하고 기뻐할 겨를도 없이 숨 가쁘게 달려왔을
무개념의 생활이었느냐고 되묻는다면 할 말을 잃었을 것이다.
일상이 모두 기쁘고 슬픈일의 연속이 아니겠느냐마는
그 중 '가장' 하나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하루의 감정 기복도 복잡한데
어찌 삼백예순다섯 날 중에서 '가장'을 기억해낼 수 있겠는가?
기다리다 못해 질문자가 거들어 주었다.
가장 기쁜 일은 오늘 이렇게 '살아있음' 일수도 있다고 하셔도 된다고. 맞는 말이다.
그것도 하나의 큰 기쁨이 될 수 있다.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갖고자 했던 내일" 이라는 말이 있으니까. 그러나 많은 사람이 식상해하는 빛바랜 유행어다.
연명延命도 하나의 기쁨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답이 상대에게 자칫 개념 없는 맹한 사람으로 비칠까 우려된다.
한 해가 저물어 가면 자주 오가는 질문이기에
12월에 들어서면 ‘일년중 가장’이란 질문에 대비해 놓는 편이 좋겠다.
갑자기 물으면 억지로 '가장'을 찾아보려고
진땀 빼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덕담 하나 준비해 놓는 어른이 되어보자.
경제활동도 사회활동도 이제는 동절기에 접어든 나이라
‘가장 기뻤던 일’은 없다고 하지 마라.
대과없이 지내는 것도 조상의 큰 은덕이니.
한 해가 탈 없이 무고했다면 이 이상 더 기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가장 슬픈 일’은 역시 대과없이 지낸 한 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슴 뛰는 일 없는 노인들의 생활
어제와 오늘과 또 내일이 다를 바 없는 무고의 연속이 어찌 기쁜일일수만이 있겠는가. 이 또한 ‘가장 슬픈일’ 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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