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美世麗尼(2018)

일본어 여기까지

온달 (Full Moon) 2018. 2. 10. 09:56




일본어, 여기까지

にほんご, ここまで

 

 

 

외국어 하나쯤은 익혀 놓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기웃거리기만 할 뿐 정작 용기 있는 결단을 하지 못한다. 어려울 거라는 선입견과 ‘지금 이 나이에’라는 자포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매 예방에 있어서는 외국어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한다. 어느 정도의 잔머리는 굴려주어야 머리에 녹이 슬지 않는다고 하니 미루고만 있을 수가 없다. 호기심을 넘어 어느덧 취미 생활로도 접어들면 만학이라도 하는 학도처럼 가슴 뿌듯한 성취감도 있을 수 있다. 글로벌 시대에 영어는 더는 외국어라 할 수 없다. 누구나 하는 것이니 모국어와 함께 차고 다녀야 하는 구급낭(First aid kits)이 아니겠는가.

 

내가 만난 첫 외국어는 고등학교 선택 과목 독일어이었다. 그러나 공부가 게을렀던 탓에 작황은 좋지 않았다. 후일 독일 쪽 유학길도 이것에 가로막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후 외국어에 대한 도전은 먼 곳이 아닌 가까운 이웃나라로 생각을 바꾸었다. 러시아를 택했다. 러시아어는 학교시절 1년을 수학했다. 학점을 인정받은 소중한 언어였지만 아깝게도 오래 동안 쓰임새가 없다 보니 기억 속에서 말끔히 지워져 버렸다. 중국어도 시도해 보았다. 중국어야 말로 혼자 독학하기가 힘든 언어였다. 발성 흉내 내다가 주저앉고 말았으니 내게는 가장 수명이 짧았던 외국어다.

 

일본어는 대학 생활 말미에 학원을 한 분기 다닌 적이 있었다. 계속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멍청한 젊은이의 투자는 안목이 넓지를 못했던지 아까운 돈과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그런 노력이라면 청춘사업이 더 바쁘다며 희희낙락했다. 맑은 머리에 쉽게 담아낼 수 있을 언어를 그렇게 놓치고 말았다. 그동안 몇 번을 이곳저곳 기웃거린 적도 있지만 모두 신통치 않았으며 항상 동사 어미변화 문턱에 걸려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했다.

 

이젠 시간이 많아졌다. 그야말로 쇠털 같은 시간이다. 굳을 대로 굳어진 머리라지만 스위치를 올려 희미하게나마 불을 켰다. 다행히도 문화교실 강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수강료도 또한 저렴하여 관심만 있으면 누구나 가서 앉아 있을 수 있다. 일본어를 굳이 고생을 무릅쓰고 독학할 이유가 없다. 일본어를 다시 도전했다. 나의 학습 목표는 읽고 쓸 수 있기까지다. 취미의 목표는 명확히 해야 한다. 너무 알려고 하면 다친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아야지. 아무리 열심히 한들 굳은 머리에 그곳 유치원생 수준을 넘길 수 있을까? 그동안의 영어 실력을 되돌아보면 일본어 장래가 보였다.

 

오래전 일이다. 막내가 내게 물었다. “왜 아빠는 일본어를 배우려고 하는가?”였다. 한국 사람이면 모두가 싫어하는 나라, 부끄럽지도 않느냐는 의미였을 것이다. 중학 3학년생이니 의협심이기도 하고 나라사랑의 마음이기도 했겠지. 나는 이렇게 타일렀다. “미워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제대로 알고 미워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일본어를 다시 시작하면서 자식과의 이 약속을 다시 떠 올렸다. 나의 목표는 읽고 쓰기까지이다. 온 몸을 투신할 정도의 가치는 느끼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문화를 둘러볼 수 있는 안목과 나라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연관시켜 추론할 정도면 족하다. 원서 읽기가 목표가 아니었다. 단지 우리말로 번역해 놓은 책을 제대로 볼 수 있을 정도라면 큰 성공이다. 번역서적은 인명이나 지명이 여간 낯설지 않아서 읽고 덮으면 그냥 날아가 버린다. 원래 외국어란 휘발성이 아주 강한 것이 아니던가.

 

공들인 일본어 읽고 쓰기도 이제 매듭을 짓는다. 내가 꿈꾸어서는 안 되는 길은 가지 않기로 한다. 비껴가기로 한다. 공부 모양새를 취하는 외국어는 더 이상은 금물이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번역자의 주석까지 놓치지 않고 그들에게 가까이에 갈 수 있는 독서가 가능하게 되었으니 이것으로 흡족하다. 문화교실에는 고급반이 없다. 이곳에는 아마추어 양성소이지 전문가를 양성하는 곳이 아니다. 어느 강좌든 간 보기를 약간 지나는 수준에서 멈춘다. 읽고 쓸 수 있는 정도를 넘어나는 일은 전문가의 몫이다.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맞닥뜨릴 정도의 어려운 일들을 넘겨다보는 것은 그들의 직업을 탐하는 일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 지리적으로는 가깝고 마음으로는 먼 나라라는 뜻이겠지. 나는 제대로 알기나 하고 미워하는 건지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고 있다. 아마추어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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