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 주십사’ 하는 요청이라면
젊은이 귀에는 강아지 짖는 소리가 ‘멍멍’이다. 일제 강점기를 거친 세대에게는 ‘멍멍’보다는 ‘왕왕(ワンワン)’이라고 한다. 완고한 분들은 심지어 순수한 우리말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요즈음은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여 국회에까지 자연스럽다. 광고전단 (=찌라시 ちらし), 공사판 밥집(=함바飯場 はんば)등을 모르는 젊은 세대들은 의정활동이나 신문 사회면 읽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저작물을 윗사람이나 친지에게 보낼 때 청람淸覽이라는 단어를 많이들 사용한다. 책을 상재한 후 가장 가슴 뿌듯한 일 중의 하나가 윗분이나 친지에게 본인의 저서를 보내는 일이다.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잘 읽어 봐달라는 주문쯤으로 여기고 별생각 없이 적는다. 너도 하고 나도 하니 예절에 있는 표현일 것이라는 생각에 의심이 없다.
그러나 청람淸覽은 우리말이 아니라 이웃 나라 일본에서 들여온 淸覽 (せいらん) 이다. 원래 우리말 사전에는 없는 단어다. 우리식 뜻풀이로 한자를 재구성 해 본다면 요청(請)을 하는 뜻과 읽어달라는 람(覽)이라면 청람(請覽)이라는 단어가 되거나 그것이 아니라도 청람(淸覽)이라도 있어야 한다. 아래의 우리말 사전 (동아, 민중서림)에는 없는 단어다. 간신히 교학사 발행의 (한자어-외래어)우리말 국어사전에서만 볼 수 있었다. 언어의 뿌리가 일본어 淸覽 (せいらん)이였다.
많은 사람들이 유행어처럼 쓰고 있으니 외래어 사전에 등록이 되고 인터넷에도 등장하였다. 언어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생성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는 원칙에 충실했던 모양이다. 글 쓰는 지체 높으신 문인들이 쓰는 용어라서 생각 없이 따라 하다 보니 유행어가 되어 슬그머니 한자리를 얻은 것일까. 이제는 인터넷 검색어에도 나오는 말이 되었다.
예) 우리말 사전
1. 동아 새 국어사전 ( 동아 출판사, 2017 5판): 단어 없음
2. 엣센스 국어사전 (민중서림, 2017. 6판): 단어 없음
3. 네이버 국어사전 (日韓辭典과 동일) : 있음
일본어 사전에 설명된 淸覽의 사전적 뜻은 ‘편지 등에서 상대방이 보는 일의 존댓말’이다. ‘보다 (見る)’의 일본어 존경 표현이 ‘보시다 ご覽になる’이다. 청(淸)은 청(請)의 일본식 한자 ‘신자체’로 보인다. 국어실용사전 한자어 외래어에는 일본어에 어원을 둔 淸覽 (せいらん)로 설명되어있다.
1. エリド 日韓辭典 ( 시사영어사, 1993. p86) : 단어있음)
淸覽 (せいらん) 명사《文語的》, 편지 등에서 상대방이 보는 일의 존댓말
2. 국어실용사전 한자어 외래어 (교학사, 2016): 단어 있음)
淸覽 :편지따위를 남에게 보일 때 남을 높여서 그가 보아줌을 이르는 말. (せいらん)
3. 네이버 일본어 사전
위 エリド 日韓辭典과 동일
결과적으로 淸覽은 외래어로 우리나라에 안착된 일본식의 간청의 말이다. 일본인이 한국인에게 이런 표현을 하여 자기 저서를 주었다면 지극히 자연스럽고 예의 바른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끼리라면 淸覽으로 예를 갖춘다면 별도의 설명이 되지 않으면 낯설어 할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오래전부터 사용해 오던 우리식 표현들이 이미 있기 때문이다.
종래에 써 오던 존람(尊覽)이나 혜감(惠鑑)또는 혜존(惠存)이 그것이다. 우리말 사전에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던 용어들이다. 단지 주의를 필요로 하는 것은 마지막에 있는 ‘혜존 (惠存)’이다. 책이나 물건이 아닌 일반 편지에서 ‘간직하다’의 의미인 혜존(惠存)을 쓰면 본인의 편지를 오래 보관해 달라는 우스꽝스런 부탁이 될 수가 있으니 피하는 것이 좋겠다.
* 존람 尊覽 : 남이 관람함을 높여 이르는 말.
* 혜감 惠鑑 : ‘잘 보아 주십시오.’라는 뜻으로, 자기의 저서나 작품을 남에게 보낼 때 상대편 이름 밑에 쓰는 말.
* 혜존 惠存 : ‘받아 간직하여 주십시오.’라는 뜻으로, 자기의 저서나 작품 따위를 남에게 드릴 때 상대편의 이름 아래에 쓰는 말.
아시아권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러하듯 뿌리를 한자에 둔 우리말이 많다. 설상가상으로 장기간 일본의 우리말 말살 정책 폐해로 일본의 잔재까지 곳곳에 널려있다. 이미 귀화해 우리말화 되어버린 것들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굳이 잊혀가는 용어를 새롭게 발굴이라도 하듯 외국어를 쫓아간다는 것은 상당히 어색하다. 설령 그것이 여러 사람이 많이 쓰는 것이라서 사전에 등록을 하였다손 치더라도 신상품처럼 애호하거나 선호할 것까지는 없지 않을까 싶다, 국어순화 운동에 동참하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넓은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기대하면서 지금까지의 오용을 필자부터 고쳐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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