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을 다시 펼치며
우리글을 우리가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허다한데, 하물며 외국 유명 작가의 작품을 번역한 것을 우리 이야기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번역자는 직역보다는 상황에 따른 의역이 편리하다며 독자에게 도움을 주려 한다. 그러나 그 나라의 문화 환경을 이해하지 못할 경우에는 의역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직접 해결하겠노라며 원서를 읽어갈 재간도 없다. 전공자가 아니라면 10년이 걸려도 한 권의 작품 읽기도 쉽지 않을 터.
필자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들은 읽기를 크게 반기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런 작품들은 작가의 유명세 때문에 구입을 해서 선반에 치장해 놓는다. 두고두고 묵혀서 읽는 편이기도 하지만 결국 엄두를 못 내고 영원한 장식용으로 모셔두는 경우도 허다하다. 꼭 읽겠노라 마음먹는 작품은 사전에 인터넷 검색을 하여 여러 독자가 올려놓은 독후감이나 출판사의 작품 보기 개요를 다 훑어보고 사전 답사를 한 다음에 조심스레 작품을 연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작품이 있었다. 이번 계절에는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1972))의 『설국』을 다시 보기로 했다. 준비해 둔 번역 책, 일어 원작, DVD 등을 전부 동원했다. 책을 읽는 것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줄거리가 파악되지 않았다. 한글 자막이 있는 DVD 를 동원하였으나 분위기 파악은 도움이 되었으나 원 작품이해에는 신통치 않았다.
『설국』의 무대는 니가타〔新渴〕현의 유자와〔湯澤〕온천이다. 외진 시골에 불과하여 기차가 다니지 못할 정도의 큰 눈이 내리고, 눈에 갇힌 채 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산골의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눈 지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서정과 분위기를 주로 삼고 있다.
눈에 갇혀 사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단순하고 그렇고 그런 통속적인 남녀관계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로 생각했다. 이야기 구도를 정리해보면 춤 선생댁의 병든 아들인 ‘유키오’를 사랑하는 '요코' , 환자 '유키오'는 '마르코'와 약혼자로 소문만 나 있다. 따라서 ‘요코’는 ‘유키오’에게 일방통행이다. 마르코는 ‘유키오’의 치료비를 보태기 위해 기생이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은 자기가 좋아서 그 길을 택한 것이다. 다만 주위의 눈총을 의식한 도의적 책무를 다하기 위한 것처럼 보였던 것. ‘유키오’는 ‘마르코’에게 일방통행의 사랑을 보낼 뿐이다. 이런 와중에 동경에서 온 여행자 '시마무라'라는 유부남이 끼어들어 ‘마르코’의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이제야 양방통행이 되는가 싶었다. 두 사람은 이별과 재회를 오가며 로맨스를 즐기지만 결국 ‘마르코’의 ‘시마무라’에 대한 사랑도 일방통행이었다. ‘시마무라’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핑계 삼고 가정으로부터 일탈을 즐기는 몽환의 사내였기 때문이다. 작품의 구조상으로만 보면 유자와 온천장 여관에서 벌어지는 남녀 간의 흔해 빠진 삼류의 신파조 극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작가 연보를 살펴보니 『설국』의 작가는 한 작품을 쓰기위해 매달린 것이 아니라 생각날 때마다 써서 잡지사로 보낸 것을 10년을 넘어 한곳에 모아 각색을 반복하여 한 권으로 묶어낸 작품으로 밝혀 놓고 있다. 그래서 그러한지 분명한 스토리보다는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 주변의 자연 묘사에 치중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기상천외의 반전 스토리가 나오거나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뚜렷한 무엇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노벨문학상은 대단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저명한 몇몇 문인들은 해마다 갈구하는 상이 아니던가. 심사위원들은 얼마나 엄선에 엄선을 거쳐 상을 수여했을까. 내심 작품 속의 그 무엇을 찾아 나서고 싶었다. 무엇보다 수상의 배경을 살펴보았다. 1968년 노벨문학상의 수여 변은 작가의 작품 활동이 지고의 미의 세계를 추구하여 독자적인 서정문학의 장을 열었다는 평가와 더불어 그간의 작품 활동을 높이 평가했다고 되어있다. 어리석은 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다가 정작 달은 보지 못한다. 작가가 보여주고자 한 행간의 의미를 놓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류의 신파극이란 혹평에서 최고의 명작이란 호평으로 바꿀 때까지 필자에겐 인내심이 더 요구될 것이다. 다행이 번역자가 여럿이 있어 다른 이의 번역 『설국』을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이번 번역자는 작품해설을 후미에 붙여놓아 다행이었다. “『설국』은 줄거리가 주가 되지 않는 작품”이란다. 그런데 필자는 이 작품에서 자꾸 줄거리를 잡으려고 애를 썼으니 관전 포인트를 잘못 잡았다. 줄거리를 파악하려다 진작 소중하게 여겨야 할 작가의 심미안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작자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감각적이고 주관적으로 재창조된 새로운 현실묘사를 시도하는 <신감각파> 운동을 한 사람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독서의 수고를 많이 덜 수 있었을 것이다.
"나라의 고유한 문화와 정서가 짙게 배어있는 훌륭한 작품일수록 번역이 힘들다. 그런 까닭에 『설국』은 참으로 번역자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소설이다."라고 번역자는 실토한다. 읽기도 혼란스러운 정황들을 우리말로 술술 담아 옮겨내는 수고 앞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적지 않은 땀을 흘렸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이제 필자는 영화와 함께 번역서를 대조해 가며 다시 감상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왕 부족한 능력이니 몇 년이 걸린들 어떠하랴.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만이 가지는 탁월한 묘사능력과 변화무쌍한 수사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그의 섬세하고 오묘한 서정이 내게 다가와 노벨문학상의 진가를 알아볼 때까지 그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언젠가 또 다른 눈의 고장이 필자 앞에도 펼쳐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참고자료:
설국 (일한대역문고 15, 16) / 다락원 출판부 역주/ 1993년/ 다락원
설국 (세계문학전집 61) 유숙자 옮김/ 2002년/ 민음사
영화: 설국 / 원작: 가와바타 야스나리 川端康成 / 감독: 大庭秀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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