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에 훅간다
만산홍엽滿山紅葉이다. 봄날은 하나하나의 꽃으로 만화방창萬化方暢을 이루지만, 가을 단풍은 천지를 한꺼번에 불태우기에 온 산이 붉은색으로 가득하여 더 큰 감동이다. 만산홍엽의 강렬함을 어찌 봄날에 비하랴. 강원랜드를 다녀오는 길에 불영계곡에서 느낀 가을 산 감상법이다. 언제 이렇게 세상이 변해 버렸을까? 가을비 한 방으로 여름을 훅 날려버렸으니.
10월도 끝자락에 접어들고 있으니 이 계절도 첫눈 한 방이면 훅 가버리겠지. 가는 세월을 여백구과극如白駒過隙이라 했던가. 그러고 보니 성탄절마저 두려워진다. 징글벨 소리가 나면 시끄러웠던 병신년 한 해도 한 방에 훅 날아가고 내게는 나이테 하나가 또 남겨지겠지.
좋아하는 것이라 너무 붙들고 늘어질 일이 아니다. 언젠가는 내려놓아야 할 것일 테니. 유행가 가사처럼 돈도 명예도 세상만사가 세월 앞에서는 모두 한 방에 훅 갈 수 있는 것일지니. 맹랑한 가수의 노래라 싱긋 웃고 넘겼더니만 요즘 매스컴에 들락거리는 사건들을 보고 있노라니 노래 부른 이의 선견지명이 보통이 아니다. 방송을 켤 때마다 한방에 훅 가는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로 세상이 요란하다.
註: 여백구과극 (如白駒過隙)
흰말이 달리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시간과 같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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