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美世麗尼(2018)

맑은 바람 속 밝은 달을 기다리며

온달 (Full Moon) 2018. 2. 14. 08:55




맑은 바람 속 밝은 달을 기다리며

 

 

수가무명월청풍(誰家無明月淸風), 이는 벽암록碧巖錄에 나오는 글이다. 누구의 집이라고 해서 청풍명월이 없을 것인가라는 뜻이다.

 

불가의 무진장 큰스님 설법에서는 이 문장속의 청풍명월을 부처님의 자비로 풀이하고 있다. 맑은 바람 속 밝은 달은 부잣집이나 가난한 집이거나, 권세 있는 집안이나 이름 없는 집안이거나 다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공평하게 나누어 주는 부처님 대자대비도 스스로 담을 쌓거나 발을 내려 막아 놓는다면 부처님인들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논리다. 모두 마음을 열고 거져 주는 부처님 말씀을 받아들이라는 설법이다. 진흙이 많을수록 부처가 크고 물이 깊을수록 배가 높다고 하지 않았던가.

 

또한 청풍명월은 혼자 세상의 슬픔을 다 안고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인생의 행· 불행에 대해 우주의 섭리는 늘 공평하여 누구는 덜 주고 누구는 더 주는 그런 기복이 있는 복락이 아니다. 또한 그 양은 달빛처럼 만인에게도 공평하고 더 더욱이나 행· 불행의 양은 정확히 저울추 위에서 평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기에 지금 불행하다고 해서 늘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위안 삼는다. 천국복락은 이 땅에서 고생하는 자, 억눌린 자, 마음이 가난한 자의 몫, 세상을 고르게 비추는 청풍명월이 어찌 나를 못 본 체할 것인가. 염원은 위안을 넘어 약속을 받아 내려는 다그침으로 강하게 작용한다.

 

일본 저명작가 엔도 슈샤쿠의 청풍명월은 이러하다. 그는 '불행에서 행복의 가능성을 보다'라는 글에서 "젊은 시절 낯가리기가 심해서 대인 관계가 좋은 편이 못 되었다"고 실토를 하면서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서 마음에 잘 맞지 않는 사람도 만남을 거듭함에 따라 그 사람의 진정한 인간미를 느끼게 되고 어느새 그 사람과 절친한 사이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 '좋고 싫음'이 분명했던 것에 대한 반성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비쳤을 청풍명월을 생각하면서 그가 싫어하던 사람에게서도 똑 이 비쳤을, 달리 표현해서 내재해 있을, 밝은 면을 느끼려 특별히 노력했다는 것이다.

 

밝은 달 모습은 혼탁한 현금의 난세에 이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의 덕목으로 삼아도 좋겠다. 중천에 떠서 세상의 아픔을 두루 만져주는 어진 성군을 기다리는 마음에서다. 모든 이의 위로가 되어 줄 수 있는 맑은 달, 홀로 독야청청할 수 있는 기개를 가진 달, 거짓이나 야합을 모르는 정직한 달, 말과 행위가 일치를 이루는, 앞과 뒤가 다르지 않는, 높이 뜰수록 스스로 외로워질 줄도 아는, 높은 곳에 살아도 낮은 곳을 비추기를 잠시도 잊어버리지 않는, 이런 맑은 바람 속 밝은 달 같은 청풍명월의 리더는 어디 없을까? 시공을 넘어 천 년이란 세월이 지났건만 안개 낀 바다에 나침판 하나가 절실해지는 지금 수가무명월청풍誰家無明月淸風이란 글귀가 새삼스럽다. 2017.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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