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과 태극기 사이에서
국기는 어느 나라이든 그 나라의 표상이다. 국기는 국민과 주권과 영토를 의미하는 상징성이 있어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나라가 패망하여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지경이 되지 않는 한 나라의 상징물인 국기의 훼손은 국가의 존엄을 모멸하는 것이 되어 전쟁도 불사할 일일지도 모른다. 오대양 육대주 모든 나라의 국기란 곧 그 나라 자체다.
우리나라는 국기를 태극기라 부른다. 태극기 만 보고 살았던 지난 세월 반세기가 필자에게는 있다. 직업상 눈을 뜨면 애국가를 부르고 태극기가 오르고 내릴 때 걸음을 멈추고 거수경례로 나라를 생각해야 했던 생활이 있었다. 그런 덕분에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태극기를 빼놓고는 내 직업의 의미는 찾을 수 없을 것이며 내 삶이 끝나는 날에도 유일하게 내 위를 덮어줄 따뜻한 보료가 되어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국가는, 아니 국기는 곧 나의 마지막 잠까지 포근히 재워줄 어머니의 품속 같은 존재이니까.
어느 날 갑자기 태극기의 신성한 모습을 도적맞았다. 태극기를 무리 지어 다니며 편 가르는 깃발로 오용했기 때문이다. 태극기를 사랑하거든 우리를 지지하라며 무리와 나라를 동일시하여 국기를 앞세워 정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붉은 색 현수막마다 국기는 구호와 함께 인쇄되어 펄럭거렸고, 태극기가 날리는 군중 속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면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으로 매도되어 무리들의 냉소를 감수해야 했다. 태극기와 촛불은 같은 등식 속에 편 가르기가 진행되었다. 태극기와 촛불이 나란한 위치에 놓이다니 이런 불행한 일이있나. 한 정파의 깃발이란 도구로 흔들어 대던 태극기 속에는 국민도 없고 주권도 없고 국토도 존재하지 않는다. 깃발 속에는 그날의 혼돈과 선동, 정쟁만 남아 우리를 슬프게 하였다. 깃발로 전락한 국기를 흔들며 아스팔트 위를 적실 피비린내 나는 격돌을 충동질하던 애국자는 지금 어디서 나라 사랑을 하고 있을까?
이후 국경일이 되면 태극기를 게양하는 마음이 늘 개운치 않다. 달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게 된다. 국기와 깃발의 사이에 혼란스러움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태극기에 대한 이 깊은 상처를 누가 치유해 줄 것인가? 필요에 따라 흔들고 말고, 구겨서 버릴 용도라면 하필이면 태극기를 들어야 했을까? 은연중에 느껴지는 불순한 의도가 유치하기 짝이 없다.
필자는 전국노래자랑을 즐겨본다. 구순의 연세에도 정정하게 사회를 보는 송해 선생님의 노익장도 존경스럽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노래라는 매개체로 국민화합을 이루어가는 프로그램으로 이만큼 훌륭한 것이 있으랴 싶어서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못하여 매력을 잃어버렸다. 그들이 등에 업고 손에 들고 흔들어대는 것이 태극기였기 때문이다. 이불로 뒤집어쓰기도 하고, 양손에다 잡고 오만상 호두방정을 떨고 있다. 누가 초대했는지 아니면 통제가 없어서 그런지 갈수록 그런 숫자가 늘어난다. 노인들의 행태가 깃발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 어느 날 갑자기다. 다시 트라우마가 되살아났던 것이다.
신문에 미국 대통령 집무실인 백악관 앞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시위를 하는 사진이 보인다. 미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을 만나주지 말라는 내용과 지금 대통령은 스파이였다고 적혀있다. 혹시도 아스팔트를 핏빛으로 물들이기를 바랐던 불쌍한 애국자의 모습도 있었을까? 저들이 들고 있는 것은 모두 깃발일 뿐이다라는 생각을 해보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 냉정과 열정사이를 다시 헤맨다. 깃발 속에는 국민도 보이지 않고, 주권도 보이지 않으며 그리고 국토의 이미지도 찾을 수 없었다. 그 속에는 정쟁만 가득할 뿐이다. 깃발은 한 장 손수건 보다 못한 천 조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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