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뜻대로
- 마티아 신부님 퇴임식을 다녀와서-
한동네에서 까까머리로 자라 서로 다른 길 길게 돌아, 친구 신부님 정년 퇴임식에 앉았네. 당신 앞에 얼핏 설핏 비추었을지도 모를 판사·검사·의사 어느 ‘사’자보다 사제 되길 잘했구려. 장 마티아 신부님 오늘따라 더 멋있어 보인다.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마태6. 10). 높은 걸개그림 내어 거셨구려. 지난 세월 반추하며 42년의 사제생활 퇴임 미사를 드리고 있네. 아버지의 뜻대로 시작하여 그 직무 마감하는 자리련만, 퇴임 후에도 늘 아버지의 뜻이 함께하기를 간청하는, 사제의 길.
아버지의 뜻보다는 본인 뜻대로가 더 많지 않았나를 송구해 하는 모습. 그건 나 같은 사람이나 할 소리지. 가는곳 마다 훌륭한 사제라는 입을 달고 다녔어도 자신의 성적을 볼품없이 매겨버리는 그 겸손, 친구여 난 어찌할거나? 주님의 요구 수준이 그렇게 높다 면.
성소의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온 신부님 길은 때 묻지 않아 순백색의 순수함이다. 성당 식구들이 퇴임미사 준비하는 동안 창밖은 간밤에 흰옷으로 갈아입었다네. 친구 머리에도 어느덧 흰 서리가 내려와 있고.
신부님 소임은 대부분 특수 사목이었지. 군, 학교, 병원, 교구청, 해외파견 이라니 사목자이기보다, 직장인에 가까운 삶. 큰살림 사는 자리라 사무실 냄새가 나기도 하고 정남이가 본당신부 만 했겠나그제?
숲속 공기 좋은 곳 '자그마한 본당'에서 교우들과 알콩달콩 오손도손 작은 살림 오래 사려나 했더니, 허리 좀 펴는가 싶더니. 아니 벌써 퇴임식이라니. 참, 사제는 퇴임은 있어도 퇴직은 없다고 그랬었지. 영원한 사제 예수님 길이어서 그럴까.
한 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으로 살아야 하는 군인처럼 신부님은 퇴임식이 아니라 출정식 모습으로 아직도 늠늠하고 든든하구나.
“용서하라, 이것이 사랑의 첫 걸음이다. 사랑하라,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을 받는다” 가진 것 없이도 줄 사랑이 넘치시는구나. 친구 신부님 귀한 강론 받아 적고 성당 문을 나서네.
통념도 없어지고, 눈치코치도 엷어지는 일흔을 넘긴 나이. 늘그막 우리 한번 편해 봄세. 다시 만나거든, 만날 수 있거든 우리도 한번 껄껄껄 호탕도 해 봄세. 부탁 하나 해도 되려는지? 바늘귀만큼 작은 구멍을 통과한다니 난 영 자신이 없어서 하는 말일세. 훌륭한 친구 덕에 강남 구경 따라가듯 술술 나서고 싶구려.
2017. 1. 22
'著書 > 美世麗尼(2018)' 카테고리의 다른 글
美世麗尼 miscellany Ⅱ (0) | 2018.02.20 |
---|---|
내일은 ‘너’라고 (0) | 2018.02.20 |
나루터에서 영화 ‘피아노’를 생각하다. (0) | 2018.02.20 |
가니 더 반갑고 …. (0) | 2018.02.20 |
노벨문학상에 대한 생각 (0) | 2018.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