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美世麗尼(2018)

내일은 ‘너’라고

온달 (Full Moon) 2018. 2. 20. 15:46



내일은 ‘너’라고

 

*오늘은 ‘나’ 내일은 ‘너’. 성직자 묘지 입구 좌우 기둥에 쓰인 글이다. 하필이면 이곳에 이런 글이 있느냐 싶겠지만 공동묘지에 이것 이상으로 더 해줄 말도 없지 않겠는가? 오늘 당신이 찾아온 이곳에 당신 또한 내일 똑같은 모습으로 묻혀야 한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러주는 말일 터이니.

 

우르르 남자들이 몰려나왔다. 목욕 중이었으니 모두들 벌거숭이다. 한 사람이 목청을 높이며 119를 부르라는 고함을 치고 있다. 한쪽에서 손전등을 가져오라는 소리도 있다. 어지간히 다급해진 상황인 모양이다. 장년 둘이 노인을 맞들고 나와 대기실 바닥에 가지런히 눕힌다. 얼굴이 무척 낯익다. 아침저녁으로 데면데면하게 운동장에서 만나던 노인이었다. 겨우 진정 기미를 찾을 때쯤 두 사람의 장년은 번갈아 심폐소생을 시도했다. 나머지는 모두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거나 수수방관자요 들러리다. 누구 하나 도움이 되지 못했다. 두 사람만 땀 범벅이되어 교대로 가슴을 눌렀다 놓다를 반복하고 있다. 외형으로는 이미 죽은 몸처럼 반응이 보이지 않는다.

 

속수무책의 상황이었지만 119에 신고하는 것은 잽싸게 했다. 맥도 한번 잡아 본적도 없는 숙맥들이 맥은 어디서 들은 깐은 있어가지고 맥박 뛰느냐고 물어본다. 무엇 하나 도움을 주지 못하는 무능력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발만 구르고 있어야 했다. 분홍색 옷을 입은 구조원들이 뛰어 들어올 때는 10분이 채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순간순간이었다. 소방차와 구조차량은 경광등을 번쩍이며 병원으로 곧바로 향했다.

 

오늘따라 몸이 으스스 추웠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한기가 들고 손발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보라고 아내가 닦달을 했지만 몸살일 거라며 목욕탕에 가서 푹 쉬고 오겠다는 흥정으로 결말을 보았다. 우리 집은 목욕탕 바로 앞이어서 아파트 창에서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평소 목욕시간은 매우 짧아서 30분을 넘지 못한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푹 쉬고 오겠다며 기다리지 말라고 언질을 해 놓았던 참이다. 틀림없이 식구가 사이렌 소리에 놀라 목욕탕을 내려 보았을 것이고 직감적으로 몸이 불편하다고 나간 남편에게 있을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얼마나 놀랐을까? 평소에 달고 다니는 고혈압을 생각하니 여간 걱정이 아니다. 내 머릿속은 이제 죽은 사람 걱정에서 산 아내 쪽으로 재빨리 돌아서고 있었다. 다행이다. 아내는 오래 걸릴 거라는 귀 뜸에 힘입어 집을 비우고 마트에 나가 딴에는 간만에 꽤 오랫동안 장보기를 했던 것이다. 험한 꼴 보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가족들에게는 마른날 벼락이요 하늘이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노인의 입장에서 보면 죽는 복 하나는 타고 난 분이다. 유감이다, 미련이다, 밉다, 곱다, 좋다, 그르다 쌈을 가를 겨를도 없이 찰나에 먼 길 선택을 받다니. 기도가 지극했거나 아니면 평소 부처님 공덕을 많이 쌓아 왔거나 흔히 말하는 조상 묘라도 잘 쓰지 않고서야….

 

목욕재개하고 육신의 때를 말끔히 걷어내고 정갈한 모습으로 먼 길 가시다니. 떠난 곳이 연안부두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정신줄 잡았다 놓았다 이별 수가 길지 않아서 다행이다. 중환자실 병상이 아니어서 고통을 덜 수 있어 다행이다. 현대인의 기본여정으로 손꼽는 양로원을 거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이런 여행상품이라면 누구나 웃돈 건네서라도 따라 나서고 싶을 것이다.

 

어느 시인은 죽음이란 오랜만이라면서 갑자기 어깨를 툭 치며 다가 오는 불청객으로 표현했다. 전혀 예기치 않은 시간에 예기치 않은 모습으로 갑작스레 맞이해야 하는 것이 이것이다. 이번 변고도 가끔 있을 수 있는 일이니 누구라 감히 예외일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중 누구의 어깨를 툭 친다 한들 대꾸나 거절 없이 그 노인의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눕혔을 것이다.

 

저녁 뉴스를 틀어 놓고 있었지만 동네 사고 소식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죽는 복을 부러워한다지만 그래도 노인들은 죽음을 탐하지 않느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더 낫다고 노래하지 않던가. 다시 살려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아무래도 우리가 보았던 마지막 상황에서 종료되었을 것이다. 탈도 많고 말도 많은 계절이라 뉴스거리에 올라가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하루해가 채 저물기도 전에 오늘 일은 우리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하마터면 내 어깨를 툭 칠뻔했던 그 친구도 잊고 잠자리에 든다. 아마도 날이 새면 오늘은 ‘나’ 내일은 ‘너’를 까맣게 잊고 살아갈지 모른다.

 

* Hodie mihi, cras tibi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대구 성모당에 위치한 가톨릭성직자묘소 입구에 새겨진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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