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모음/운문

그는 한 번도 날 사랑이라 불러주지 않았다

온달 (Full Moon) 2018. 6. 11. 14:43




그는 한 번도 날 사랑이라 불러주지 않았다

 

                                                         고 은 영


 

나는 그에게 슬픈 눈빛의 애처로운 한 마리 새다

혼자서 놀다가 저물도록 존재가 버거워

울어 젖히는 저 겨울 깊은 숲 속 한 마리 새다

작은 바람에도 울어 젖히는 한 마리 새다

그는 한 번도 나를 그립다 말하지 않았다

 

서러운 소리로 웬 종일 부서지는

나는 그에게 절망의 파도다

밀물의 충만한 가슴을 밤새 토 열로 게워내고

썰물에 한껏 서글픈 수치를 드러내는 고독들이

밤을 오가며 범람하는 은밀한 바다의 슬픈 연가

그는 한 번도 내게 미움을 팔지 않았다

 

어느 순간에도 처연한 내 모양에

소리 없이 반응하는 높은음자리표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어

심장으로 끌어안은 두꺼운 부피의 사연

잠깐 쓸려도 아픈 아리도록 고귀한 노래

그는 한 번도 내게 보고프다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떠 올린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내 그리움은 여전하고

사랑의 이름으로 그를 불러도 그는 대답이 없다

단지 내 안의 기억 속에서면

그는 생뚱맞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거나

아니면 환한 미소로 날 멀끔히 쳐다본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그에게 늘 아픈 바람이다

그는 한 번도 날 사랑이라 불러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안다

그 조차 말 못할 뼈아픈 사랑이라는 것을

눈물겨운 사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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