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일, 위엣 일
석현수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좋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것은 정말 좋다. 열심히 일함으로써 조직에 보탬이 되고, 회사에 기여가 될 수 있다면 열심히 하는 것만큼 좋은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열심히 일을 하되 목표 설정이 잘 되어 회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어 준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팽이는 열심히 돌았겠지만 어느 한쪽으로 가야하는 방향성(Vector)을 가지고 있지 않아 제 자리에서 맴돌았기에 움직인 이동거리는 하나도 없다. 즉 팽이로써는 한 치의 전진(前進)이 없이 헛돈 셈이다. 열심히 돌면서 오직 자기 힘만 소진하는 에너지 태우기에 급급했을 뿐이다.
조직은 위아래가 있어서 위는 위대로 아래는 아래대로 자기 직분이 있다. 저마다의 위치에 맞게 일거리가 분장 되어 있다. 아랫사람이 자기 직분을 넘어 윗선을 넘겨다보아 말썽이 나는 경우는 거의 없으나 반면 윗사람이 해야 할 일 안해도 될 무분별하게 관여해서 탈을 만드는 경우는 허다하다. 즉 부지런한 위엣 사람들 때문에 조직이 낭패를 맞는 경우다. 위엣 사람들이 위엣일에 소홀하면서까지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는 자질한 아랫사람의 일에 옥신각신 매달리고 있다면 이것은 위엣사람의 업무태만이요 곧 직무유기이다. 왜냐하면 위에는 위에대로 반드시 해야 할 자기일이 있기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손쉬운 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하다 정작 중요한 의사결정에 있어 재빨리 전념체제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의사결정이 늦어지거나, 소홀해 지거나, 아니면 업무강도가 약해져서 명확한 업무 지침을 밑으로 내릴 수 없다면 얼마나 큰 손해일까? 마치도 돛대가 부러진 배처럼 기업이 갈팡질팡하게 된다. 반면 아랫사람에게는 위엣사람이 일일이 업무에 관여하는 통에 윗사람의 배려를 받는 다기 보다는 오히려 아랫사람을 게으르게 하며, 소신없게 하며, 윗사람 의존형으로 만들어 “어찌 하오리까” 하는 ‘허락형’의 무능한 사람으로 전락시킨다.
부질없는 일을 하는 것을 사자성어로 발묘조장(拔錨助長)이라 한다.
논에 파종한 어린 싹이 빨리 자라지 않는다고 우려 하던 부자(父子)가 있었다. 아버지는 걱정한 나머지 밭으로 나가 무언가 열심히 조치를 해 놓고 집에 돌아와 아들에게 말 한다. “나가 보아라, 내가 모종(某種)을 많이 키워 놓았다.” 아들이 들에 나가보니 모종은 모두 말라죽고 있었다. 아버지가 한 일은 모종들을 모두 한 치씩 위로 뽑아 올린 것이다. 중국 고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하는 일이 안한 만도 못할 경우이다. 위엣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실무 담당자만큼 전문적이지 못하다. 때론 경험이 많아 판단에 있어 그르침은 적다고 볼 수는 있다. 그렇다고 조력(助力)의 역할을 넘어 심할 경우 내가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그 많은 일들을 어찌 감당을 해 내랴. 일일이 작은 일에 손대다 보면, 아랫사람은 자연적으로 ‘열중쉬어’ 자세가 되어 버리고, 정작 본인은 일의 부하(負荷)에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아랫사람에게도 백해무익한 일, 양쪽 모두가 바람직 하지 않는 것을 왜 사서 고생을 할까?
솔선수범 때문일까? 솔선수범은 잠시 보여 주는 헤프닝 이어야 한다. 늘 상 그렇게 하는 것은 나쁜 습관이다. 농삿일을 하면서 가계를 꾸렸던 아버지의 경우가 그러했다. 일꾼들이 놀고 있지나 않나 항상 감시 감독을 하셨고 그러다 보니 무논에는 아버지가 제일 먼저 들어가서 들어오라 고함쳐야 일이 시작이 되고, 일의 마감은 당신께서 제일 늦게 논에서 나오시며 ‘이만’하셨다. 일에 대한 표준은 철저히 보여 주신 것이다. 친구들의 어른들이 대게 오래 오래 장수를 하신 반면, 일에 철저하셨던 아버지는 일흔 중반에 타계하셨다. 아마 힘든 노동일 때문이었으리라. 주인이 일꾼 수준에 머물러 일을 하시고 또한 모범을 보였으니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옛 사람들 우스게 소리에 ‘양반이 종놈 보다 먼저 죽는다’고 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종 부리기가 여간 힘들지 않아 양반은 속 앓이 하다 제 명(命)대로 다 못산다는 것이다. 상전하기(經營者)가 여간 힘들지 않음을 말하는 듯하다. 회사경영에 있어 관리자가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 팔을 걷어 부치고 직접 뛰어 들거나, 전문성을 빙자로 내손으로 처리해야겠다는 유혹이야 간절하지 않을까. 일회성의 시도(試圖)가 부지불식간에 나쁜 버릇이 되고, 자기도 모르게 팽이처럼 에너지를 태우게 된다. 간부들은 떠 밀어 올리는 일의 홍수에 헤어나지 못해, 전체를 보는 안목보다는 아랫사람과 경쟁하는 꼴이 되거나 아니면 일상의 노무로 전락할지 모른다. 아랫 일은 아랫사람에게 위엣 일은 윗사람에게로 가야 한다. 혼자 설치는 연주(one man band)형 직장 분위기 보다는 여럿 악기가 다양한 소리를 내는 음악 연주(orchestra)형 조직이 더욱 아름다운 직장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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