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말을타고(2012)

우리 모두의 일이다

온달 (Full Moon) 2015. 4. 16. 09:01

우리 모두의 일이다 

 

석현수  

 

 

버스에서 한 노인이 젊은이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유는 시끄럽다고 조용히 해 달라는 말이 상대에게 불쾌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그 젊은이는 한국말도 제법 할 줄 아는 영어 원어민 선생님이었다. 다음 날 신문에는 차에 타고 있던 다른 사람들은 뭣하고 있었기에 이런 소동을 일찍 차단하지 못했느냐는 기사가 나왔다.

대단한 발전이다. 이런 일을 매 맞은 한 사람 노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기보다는 차에 탑승했던 여러 사람의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을 개탄한 신문의 시각이 맘에 들었다. 여태 이런 각도에서 접근하는 기사가 드물었다. 노인이 없는 핵가족 세대들은 예삿일처럼 여기고 웃어넘기지 않았던가. 혹시 구경까지는 하지 않았을는지?

꼬부랑 산길을 가던 버스가 차에 탄 건달들에 의해 강제로 세워지고, 이에 반항하던 운전기사는 만신창이가 되도록 두들겨 맞았다. 결국, 타고 있던 처녀 하나가 제물이 되어 차 밖으로 끌려나가 건달들로부터 몹쓸 짓을 당하였다. 차 속의 많은 사람은 운전기사처럼 되기 싫어 나서지를 않았으며, 더러는 곁눈질로 볼거리로 즐기는 이도 있었다. 한참 후 건달들도 처녀도 흩어진 옷을 추스르며 뒤따라 차에 올랐다.

처녀는 “남의 일에 참견하다니 맞아도 싸다.”라는 말과 함께 자기를 도우려 했던 운전기사를 차창 밖으로 밀쳐내 버리고 대신 핸들을 잡았다. 차에서 쫓겨난 운전기사가 한참이나 걸어 산길을 내려왔을 때 그는 버스 한 대가 계곡에서 굴러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으며, 현장 수습 경찰관으로부터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수수방관하던 이들에 대한 참담한 복수극일 것 같지만, 거기까지 설명된 뒤 문장은 없었다. 가까운 이웃 나라에서 일어났던 실화라는 주석이 달린 인터넷 기사다. 지금도 나는 이 글이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하여, 모든 이는 한 사람을 위하여One for All, All for one.’란 스위스인들이 썼던 말이다. 1868년 가을에 있었던 대홍수 시 국가 재건을 위한 슬로건으로 사용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법정 스님의 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불교의 화엄경에 이르기를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이다 一卽一切 多卽一.’라는 가르침이 있으니 이 또한 같은 말이다. 결국, 개인도 중요하고 나라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옳은 일이라면 팔을 걷어붙일 수 있는 이도 필요하고 이러한 용기를 대단하게 보아주는 시민의식도 중요하다. 남들이 안전할 때 비로소 나도 안전해질 것이다. 모두가 불안해하는 곳에 어찌 나 혼자만 안전하리란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특히나 공공의 장소에서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일들이 벌어지는 그때마다, 사람들은 늘 구경꾼 입장에 선다.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일로 공연한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내게 이해관계가 없는 당신만의 일이란 없다.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2003. 2)는 술 취한 이가 시너 통을 들고 열차에서 불을 지르겠다고 위협하며 소란을 피우는 일로 시작된다. 용감한 한 시민이 일어나 그를 제지하려 했으나 혼자로서는 역부족이었다. 의인義人 하나만 더 있었던들 시너 통을 빼앗을 수 있었을 텐데. 열차 내에서는 모두가 자기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 눈 감고 조는 척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나와 상관없다며 눈 감았던 많은 사람이 하늘 열차를 타고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야 했다.

 

 

촛불을 들고 머리띠를 두르는 것도 정의로운 일이다. 부정부패에 대한 시민의 감시 감독도 필요하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우리 목숨을 보전하는 일이다. 다 같이 살아남는 방법을 잊고 혼자만 살겠다면 나를 위한 보호막은 누가 되어 줄 것인가? 강도야 하는 소리에 몽둥이를 들고 대문을 뛰쳐나오는 시골 마을과 비교하여 자기 집 문단속이나 하고 조용히 불을 끄고 자는 척 숨죽이는 도회지 쪽을 비교해 보면 좋겠다.

돈을 많이 벌어들여 강대국이란 소리를 듣는 것도 반갑다. 그러나 더 기다려지는 것은 문화 선진국이라는 소리를 듣는 일이다. 내가 아니더라도 설마 누군가가 내 대신 나서주겠지 하는 생각에 남의 등 뒤로 숨어드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선진국수준의 사회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한 사람의 불행은 곧 그 사람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내일이면 곧 나의 불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침묵으로 일관한 양들이 깨어나는 성숙한 시민 사회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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