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소至聖所
석현수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자기만의 곳, 책을 읽기도 하고, 신문을 펼치기도 하고, 때론 비생산적, 비문학적 퇴행성 글이라도 마음 놓고 긁적거릴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기웃거림을 당하지 않고, 멍하니 천정을 보고 넋을 놓기도 하며, 무한정 침묵으로만 일관해도 왜 심란해졌느냐고 이유조차 물어보는 이가 없는 곳으로 숨어들고 싶다.
친구네 집 구경을 갔다. 여느 곳이나 다름이 없어서 지하에는 생활용품이나 허드레 용구들, 그리고 세탁기와 약간의 운동기구가 있었다. 1층에 있는 거실과 주방 그리고 몇 개 침실이 있었다. 마지막 안내한 곳이 다락방이었다. 서너 평이 될까 말까?
“여기가 나의 지성소야.”
지극히 성스러운 곳이란 뜻이다.
교회에도 나가지도 않는 사람이 생뚱맞게 지성소라니 도대체 무엇하는 곳일까? 친구의 말로는 세상 누구로부터도 방해받지 않을 권리가 보장된 곳이란다. 심지는 부인까지도 그의 지성소에는 들르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하고 있단다.
지성소sanctuary란 기독교 구약 시대에 성전 또는 장막 안에 하나님을 모셔두는 곳이다. 그 속에는 성스러운 계약의 궤가 들어 있는 곳이어서 제사를 목적으로 제사장만이 출입할 수 있다. 삼한시대에 천신天神을 제사지낸 소도蘇塗와 같다고나 할까? 소도 역시 신성 지역이어서 설령 죄인이라 할지라도 이곳에 들어온 자는 함부로 처벌하지 못하였다고 하지 않았던가.
집안에 지성소를 가지다니.
친구가 무척 부러웠다.
그곳이 크고 화려해서가 아니라 그런 개념을 가졌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다. 살아오면서 큰 집도, 세간살이도 한 번도 부러워한 적이 없는 사람이 지성소만은 예외다. 공연한 헛바람일까?
나만의 곳?
대단히 매력적이다.
무슨 감춰둘 비밀이 많아서가 아니다. 굳이 사춘기의 아이가 아닐지라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들은 누구든지 가지고 있다.
화장실 한구석인들 어떠랴. 문을 걸어 잠그는 순간부터 그곳은 사용자 전용으로 변할 수 있어 허락은 노크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니.
지성소는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유무有無에 의미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들의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한 지붕 아래 살면서 무엇을 가리고 숨겨야 할 그런 사이가 아니지 않은가. 설령 여분의 공간이 있다 하더라도 혼자 있겠다며 강제로 문을 잠가버리는 행동을 상상해 보라. 얼마나 서운한 담쌓기이며 자기 함정을 파는 위험한 일이 될 것인가. 잘못하면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환자 취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유명 작가는 컨테이너에 들어가 작품활동을 했다. 감옥에서와같이 작은 창구를 통해서 밥을 들여다 먹었다고 한다. 이런 것은 일종의 기행奇行일 뿐이어서 보통 사람들은 흉내라도 낼 일이 못된다.
지성소는 자연스러운 곳에 있어야 하며 뜻에 맞는 사용이 되어야 한다. 생각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서나 혹여 그르친 일에 대한 자숙의 시간이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겠다. 황급히 어딜 다녀올 때가 있어도, 책상 위에는 보고 있던 책이나 쓰고 있던 원고들이 널브러져 있어도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곳, 남의 시선을 의식한 정돈이나 보호 본능에서 잠금장치조차의 충동을 느끼지 않는 곳이면 좋겠다.
피곤한 영혼을 쉬게 할 수 있는 지성소, 소도蘇塗처럼 면책의 특권을 줄 수 있는 지성소를 꿈꾸어 본다. 그곳에서는 시간을 채근하는 재깍거리는 벽시계도 방해가 될 정도가 되겠지.
'著書 > 말을타고(2012)'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향기를 탐하다 (0) | 2015.04.16 |
---|---|
우리 모두의 일이다 (0) | 2015.04.16 |
책 분盆갈이 (0) | 2015.04.16 |
눈으로 살핀 클래식 (0) | 2015.04.16 |
어머니의 울음 (0) | 2015.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