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말을타고(2012)

책 분盆갈이

온달 (Full Moon) 2015. 4. 16. 08:59

책 분갈이  

 

석현수 

 

 

다음에 사야지 하고 되돌아왔더니 그 사이 값이 올랐다. 겉모양이 고서古書 같은 분위기라 당분간은 나 아니면 찾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심하고 있었는데 한 달 사이에 화장을 고치고 다시 선을 보였다. 표지의 서체도 돋움체에서 흘려쓰기체로 현대적 감각을 살렸다. 높아진 가격표시는 분값을 더 내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최신인쇄판보다는 되레 발행연도가 오래된 것을 집어든 적도 있다. 구판 한 권이 남아 신판과 나란히 꽂혀 있어 살피기가 쉬웠다. 단지 표지만 바뀌었을 뿐 목차와 쪽수는 정확히 같았기에 신판보다는 구판을 택했다. 가격이 훨씬 쌌다. 마지막 남은 재고분 한 권에 횡재나 한 듯 기뻐했다. 분갈이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굳이 재판을 비싸게 살 이유를 못 느꼈다. 분갈이가 무성의했던 책일 경우다.

이론서나 번역서일 경우는 시류를 타는 것이 아니다. 오래되었다고 해서 발행을 중단하거나 고서 취급을 해서야 될 일인가. 기술도서야 6개월의 수명도 길다는 분야가 있지만, ‘원론原論’이나 ‘학’, ‘문학 작품’은 10년 수명도 오히려 짧다. 매무시나 고쳐 서점가에서 내놓아도 찾는 사람이 많을 텐데 왜 저자들은 책 쓸 생각에만 매달리고 이미 출간한 저서에 대해서는 사후 관리를 해 주지 않는 것일까.

아파트도 리모델링을 하고, 시가지도 재개발하는 마당에 책도 증․개축을 해야 한다. 책에서도 패션이 있으니 모양은 시대조류에 따르는 것이 좋겠다. 책의 변신은 무죄다. 우선 손님들의 눈에 필이 먼저 꽂혀야 하며, 읽고 난 후에라야 내용을 알아줄 것이 아닌가. 차림새가 허술해 본선 진출도 못하고 주저앉아 버리면 어떡하나.

이왕 분갈이 한다면 성의를 내자.

토기 분을 사기 분으로만 갈아 치우는 것이 아니다. 겉과 속을 같이 말끔히 손질해 주어야 한다. 흙도 갈아주고, 엉킨 뿌리들은 가지런히 정리해 주는 정도의 공을 들여야 할 것이다. 처음 펴낸 책에 만족하는 저자는 아무도 없다. 작가는 늘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사람들이어서 아무리 성의를 내고 감수를 해도 무엇이 빠져도 빠진다. 하자瑕疵는 활자화된 이후에라야 남의 눈에 먼저 띄는 법이다. 한글 맞춤법만 하더라도 해마다 달라진다. 초판에서 손대지 못한 실수들은 수정은 해서 내보내는 것은 기본일 것이다.

몇 쇄를 하는 것은 수요 공급 논리로 장삿속에 따를 일이지만 적어도 세상에 빛을 본 책들은 명맥 정도는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후학들을 위해 출판사나 저자의 배려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절판이란 책에 있어서 사형선고다. 내용보다 표지가 화려해진 신간들 때문에 제때에 옷을 갈아입지 못한 오래된 책들이 뒤꼍으로 사라져야 한다는 것은 아까운 지식의 사장死藏이라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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