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 생일 날
“큰아이 생일 날/ 꼬꼬대 한 마리 잡았더니/ 집안이 온통 꽃이다 // 뼈대며 마음가짐이/ 제법 무던해 가는데/ 알뜰한 믿음으로 하여/ 감사하고 있는 아내의 얼굴에/ 속일 수 없는 숱한 생활의 쪼가리가/ 아른거린다// 한恨이사 없어도/ 시달린 연륜/ 인생 사십을/ 봄 가고 가을 오고/ 삶이란 얼마나 허虛한 것이냐/ 삶이란 얼마나 귀貴한 것이냐// 아이야/ 이런 날 나는 네게 무얼 줄 건가/ 아무것도 없구나, 정말// 아버지는/ 이런 날일수록 아무튼/ 흐뭇한 시詩를 써야 한단다.”
목인牧人 전상렬 시인 (1923~2000) :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입선으로 등단, 시집 「피리 소리」 외 12권, 산문집 「시의 생명」 외 다수와 고희기념문집을 남겼다.
가난했던 시인, 나의 스승님을 그리며,
<큰아이 생일 날>, 시에서 말하는 큰아이도 벌써 일흔의 고지를 넘보고 있다. 선생님의 글이 수록된 『생성의 의미』란 시집의 출간 연도가 1965년 초, 여름이고 보면 이 시의 시대적 배경은 우리가 중학생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시의 소재가 된 큰아이와 나는 같은 학교에 다녔고 동갑내기다. 가난했던 아버지, 시인 가족의 식탁은 어떠했을까? 중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셨던 시인이 설마 가족을 굶기기야 했을까마는, 이 시에서 보이듯 아버지로 사는 삶은 녹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막 10년이 되는 때이니 어찌 그 궁핍한 삶이 시인만의 전유물이었겠는가. 전상렬 시인은 촌부의 맏아들로 태어나 도회지로 나와 대가족을 부양했던 그 시대의 고달픈 아버지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둘째 아이도 있고 셋째도 있었지만, 특별히 큰아이 생일이라서 닭 한 마리를 잡았단다. 웃음꽃이 쏟아지는 행복의 저녁나절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었다. 그나마 그 행복은 아내의 알뜰한 내조가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라며 그 공을 아내에게 돌리고 있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는 아이 생일에 줄 선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어 시를 써야 한다. 제목 하여 <큰 아이 생일 날>이다.
아이 생일에 닭 한 마리를 잡았노라며 감격해 하는 소박한 아버지의 모습이 멋이 넘친다. 지금이야 소를 잡더라도 눈도 깜짝하지 않을 생일잔치가 되겠지만, 닭 한 마리를 꼬꼬대로 표현할 만큼 시인은 기쁨에 넘쳐 있다. 가난한 시인으로서 익살스러우면서도 거나한 자부심이 엿보인다. 케이크도, 나이만큼의 촛불도, 생일축하 노래는 아니어도, 누가 이 시인보다 더 풍성한 애정을 자식에게 전할 수 있을까? 그 아이가 반듯하게 자라 사회적인 존경을 받는 유능한 교수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소박했던 시인 아버지의 자식 사랑 때문이리라. 목인 전상렬 시인은 향토적 정서와 삶의 진실을 추구하고 자연 친화와 인생 관조의 빛깔이 두드러지는 서정시의 금자탑을 쌓은 시인이시다. 가난한 시인 아버지를 둔 내 친구는 아버지의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 했었던지 경세제민經世濟民을 택해 후일 경영학 박사가 되어 대학 강단에 섰으며 나라 살림을 일으켜 세우는 견인차 역할을 할 후학들을 많이 양생해 냈다. 친구의 아버님이시며, 나의 중학교 담임선생님, 그리고 문인으로서는 대선배이신 시인님을 존경의 마음으로 추억해 보았다. 예술은 가난을 구제할 수는 없어도 위안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목인 전상렬 선생님은 지금도 가난한 이들의 마음을 위안해 주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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