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상斷想
밟는 소리, 태우는 냄새까지 문인들은 낙엽을 좋아했다. 구르몽의 <낙엽>이 그렇고,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가 그러하다. 낙엽은 가을 정취에 늘 중심에 있어왔다.
지난날 가을은 문인들이 주도했다면 디지털 시대인 지금에는 TV 영상물이 주도하고 있다. 들판의 황금물결이나 붉게 타들어 가는 산, 그리고 그 속 산사에서 들려오는 풍경風磬소리까지 시청자들은 입체적으로 가을을 즐기고 있다.
때론 드론을 띄워 한 차원을 더하기도 하고, 헬기 위와 아래에서 서로 반가운 손짓을 나누는 장면까지 연출한다. 영상물이 새로운 엔터테이너로 자리매김한 덕분에 우리는 팔도를 넘어 세계의 가을까지도 안방으로 끌어들인다.
우리는 유독 가을이란 계절이 너무 짧다고 한다.
그러나 가을은 다른 계절에 비해 결코 짧지 않다. 여름 건너 바로 겨울로 뛰는 것인 양 착각에 빠질 뿐이다. 9월부터 시작된 계절을 11월 중순이 넘어서 낙엽이 떨어져야 가을을 뒤늦게 느끼기 때문이다.
낙엽에 대한 지나친 애착 때문이리라. 언제 단풍철이 되냐며 나무 색깔에 매달려 숲만 쳐다보다 두 달을 허투루 보내버린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이것이 단풍이야"하고 탄성 지를 때는 어느새 싸한 가을비 한 줄에 된서리를 맞는다.
가을이란 겨울을 향한 긴 준비 기간에 그치는 것일까. 모두들 '더 붉게 더 붉게'를 외치다 가을 벼랑에 섰다. 아직 11월 중순인데도 첫서리, 첫얼음, 첫눈이라니 다음 계절이 벌써부터 우리를 단단히 벼리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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