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꽃보다개(2013)

차車 병원을 다녀오며

온달 (Full Moon) 2018. 5. 15. 09:25

병원을 다녀오며

 

 

어딜 가자고 하면 대꾸가 없다. 몇 번을 고쳐 말해도 못 알아듣는다. 하다못해 “너 지금 어디에 있는 거니?” 하고 물어도 있는 제 좌표조차도 모른다. 날씨 탓이려니 했더니만 그것도 아닌가 보다. 추우면 더 긴장되기 마련인데, 눈 오는 날은 포근한 날이지 않은가. ‘내비게이터’는 바보가 되었다. 탄탄대로에서 경로를 벗어났다고 헛소리를 하기도 하고, 사고 날 턱에도 없는 곳에서 사고 다발지역이라며 호들갑을 떤다.

개의 1년은 인간의 7년이란다. 개 열 살이면 인간 70이다. 자동차의 1년도 개와 마찬가지다. 10년 탄 차는 제법 고령에 해당한다. 어디에서 나온 셈법인지 알지 못한다. 고등수학이 아닌 산수나 셈본 수준의 것이라 해두자. 보증 수리란 대개 5년이다. 그러고 보면 차도 35세의 장정 시기가 지나면 앞으로 건강을 책임 못 지겠다는 말이다. 인간도 40대부터는 성인병이 시작되지 않는가.

차를 만드는 사람들은 참 머리가 좋은가 보다. 절대로 고장 날 것 같지 않았던 놈이 용케도 보증기간만 막 끝나고부터는 감기 기운도 있고 몸살도 한다. 귀하게 다룬 놈일수록 응석도 심해진다. 병원 한 번 찾지 않아도 한 십 년은 펄펄 뛰어다닐 것 같더니 만년 장사는 아니었나 보다. 차 병원에 들어서서야 보증기간이 만료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머피의 법칙이라고나 할까?

‘내비’는 신경이 마비되거나 뇌경색이 있어 반쪽이 중풍이라도 들었나 보다. 수술해도 장담할 수 없으니 교환하는 것이 낫겠다고 한다. 자주 찾아오기도 번거로우니 차제에 정밀 검진을 부탁했다. 피검사니 혈압 맥박이야 기본이고 위, 대장검사를 포함해서 모두 해 달랬다. 쾌적한 실내를 위한 공기청정기 필터나 에어컨에 냉매 주입 등은 말 귀를 알아들을 수 있다지만 타이탄 벨트니 뭐니 하면 벌써 머리가 아프다. 정기적으로 갈아주는 오일은 제대로 관리가 되었지만 5년 만에 한 번 교환해야 하는 미션오일은 주행거리와 관계없이 갈아야 한단다. 보닛을 열고 청진기를 대더니 엔진의 맥박은 정상이라고 한다. 다행이다. 우로 돌아봐, 좌로 돌아봐를 시켜 보더니 깜빡이 등 레버가 고장이란다. 오래 전부터 찰칵찰칵 넘어가는 소리가 없었던 것이다. 히터 열선이 탈이 났으니 열선을 교환해야 하고, 안구 검사에서는 왼쪽 전조등이 탈이 났다고 했다. 한동안 애꾸눈으로 밤거리를 누볐나 보다. 건널목 앞에서 멈춰 서기가 약하다고 했더니 브레이크 디스크를 갈 때가 되었단다.

친절한 금자씨 같은 기사는 신이 나 있다. 어지간한 중고차 가격의 수리 견적서를 들고 왔다. 알아서 해 달라는 말이 정답이다. 아마도 그는 관리소장으로부터 상당한 칭찬을 들을 것임이 분명하다. 말 못 하는 기계야 늘 기사가 대변해 주는 것이니 기사 마음대로가 아니던가. 인간 병원에서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의사 말이라면 순순히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 차 병원에서는 예방정비라는 말로 통했다. 때론 환자를 위하여, 때론 서비스 센터의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

차도 사람과 마찬가지다. 탈 없이 지내다가도 기댈 데가 없어지면 탈을 낸다. 5년생이니 탈 날 때가 되었다고 하겠지만 뛴 거리는 아직 2만 킬로가 조금 넘을 정도다.

“선생님, 주행거리가 얼마 되지 않네요.”

이런 정도 사용할 것이라면 승용차는 왜 필요한지를 넌지시 묻는 말이다.

“없는 볼일 일부러 만들고 다닐 수는 없잖소.”

차는 맹물로 다니나? 휘발윳값이 얼만데, 열 불나게 나돌아다녀야 본전하는 것도 아니다.

‘당신도 내 나이 되어보렴.’ 말해주고 싶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기사분의 말대로라면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탈이 없는 것이 아니라도 했다. 세워 놓는 것이 타는 것보다 더 손해란다. 시간이 흐르면서 탈이 더 많이 난다는 것이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버스 지나고 손들면 뭣 하나. 중고차 거래장에서도 턱없이 주행거리가 적은 것은 기피 경향이 있다고 했다.

차를 타고 나갈 일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시내는 주차 문제 때문이고 장거리는 가족이 함께 떠나는 여행이 아니고서야 나 홀로 운전은 경제적이지 못하다. 그렇다고 이런 논리만 앞세워 숫제 차 없이 지내겠다는 것도 부질없는 고집이 될 것이다. 불쑥불쑥 간헐적으로 차가 꼭 필요할 때가 많다. 급하면 택시를 이용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할지 몰라도, 차가 있어도 택시는 탄다. 없애도 불편하고, 가져도 불편한 것이 퇴직 후의 승용차다.

처음으로 종합 진단 한 번 해 주고 병치레 운운하다니. 없애느니 마는지를 논하는 것 자체가 애완견 수준에도 못 미치는 애차심이다. 돈 좀 썼다고 돈 먹는 하마로 몰아붙일 작정인가?

신발을 숫제 없애고 맨발로 서겠다면 몰라도. 이는 현대인의 생활 방법이 아니다. 차는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수석비서관이며 내 발에 꼭 맞는 신발이다. 타이어 신발보다 더 싼 집 앞을 지나고 있다. 아차, 그러고 보니 하나가 빠졌구나. 타이어 교환도 해야 했는데……. “목적지 부근입니다.” ‘내비’는 신이 났다. 이제 정신이 제대로 돌아가나 보다. 돈 들인 값을 단단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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