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것을 탐하다니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이는 *클라크 씨가 일본을 떠나면서 학생들에게 남긴 말이다. 이후 세계대전으로 황폐해진 일본의 젊은이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기도 했고, 한국 전쟁 후 황폐해진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도 적지 않는 영향을 주었다.
이 유행어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우리는 앙케이트 형식으로 서로의 꿈을 묻기도 하고 연판장을 돌리기도 했다. 1966년, 벌써 50년이 다 된 고등학교 졸업 사진첩을 뒤적이다 문득 두 친구의 특이했던 꿈을 만난다. 한 친구의 꿈은 ‘드라이브’라면서 싱긋이 웃었던 기억이 나고, 다른 친구는 ‘승마’라고 했던 것 같다.
’60년대에 한국에 승용차가 몇 대가 있었다고, 꿈이 드라이브였을까? 드라이브가 뭔지나 알고나 있었을까? 당시로서는 꿈도 야무지다며 우스개로 넘겼다. 대구에서 첫째 둘째가는 부자가 아니고서야 자가용이란 감히 생각이나 해 볼 꿈이었던가? ‘승마’ 또한 내로라 하는 영화배우라도 사치스런 공상이지 않았던가. 나라에는 태릉에 승마장 하나가 겨우 있었다. 이들은 모두 일찍이 깨우친 아이들이었을 것이다. 야망을 가지는 데는 큰돈이 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테니 이왕이면 간 큰 소원을 했을 것이다.
다행히 두 사람은 모두 꿈을 이루었다.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기겠다는 친구는 차가 신발이 된 지금에서야 어렵지 않게 저절로 되었다. 이런 경우는 ‘이루었다.’기보다는 ‘저절로 되었다’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다른 한 친구는 승마장에서 지금도 말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특이한 의상, 헬멧, 부츠, 그리고 착 달라붙는 승마바지 차림으로 노년을 보내고 있으니 세상에 이만한 스포츠가 어디에 있겠는가. 두 사람 모두 어릴 때의 꿈을 이루었으니 행복한 사람이다. 성공이란 꼭 돈이나 명성이어야 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라는 말의 바로 뒤에 이어지는 문장을 아는 이가 그리 많지 않다. 내 생각에는 오히려 뒤쪽이 더 압권이다.
“야망이란 목전의 이득에 관한 것도 아니며, 이기적인 자기성취도 아니며, 헛된 꿈에 사로잡힌 명성도 아닌, 단지 사람으로서 꼭 지켜야 할 됨됨이를 이루기 위한 것이다.”라는 대목이다.
너무 큰 야망을 가졌다며 웃음거리가 된 두 친구는 아마도 이 문장의 후미 부분을 읽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들의 삶은 명성도 돈도 아닌, 평범하면서도 성실한 소시민적 직장인으로 지금까지 살아왔기 때문이다.
대단치 않은 야망조차도 못 이룬 친구도 있다.
꿈이 작다고 해서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나 보다. 어머니로부터 일찍 젖을 뗀 친구의 꿈은 가슴이 큰 여성을 만나는 것이었고, 글을 잘 썼던 친구는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들의 꿈은 소박하고 작았다. 그러나 먼저 친구는 꽃다운 나이에 요절해서 젖소 부인 꿈을 꾸다 말았고, 다른 한 친구는 등단하여 시인까지는 되었으나 막 유명세를 탈까 말까 한 시기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고 보니 대단한 야망이라고 했던 것은 대단하지 않은 것처럼 쉽게 이루어졌고, 대단하지 않았던 것은 그것마저도 슬그머니 비켜 달아나 버렸다. 운명의 장난이라 해 두는 것이 좋겠다.
친구들이 드라이브나 승마를 꿈꿀 때 나는 도대체 무슨 꿈을 가졌을까를 자문해 본다. 야망보다는 배가 먼저 고팠을 것이고 저녁 한 끼에 매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검은 교복에 자취생의 궁핍이 절여져 있었다. 굳이 표현해 보라면,
“밥 먹을 정도나 되고, 약간의 체면이나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다.
표현이 또래들을 속상하게 만들었나 보다. 갑자기 같은 페이지에 자리한 급우 사진들이 일제히 쑥덕거리는 눈치다. 이룰 수 없는 야망을 가진, 하늘 것을 탐하는 욕심쟁이라나, 뭐라나? 그래 너희들이 맞아, 지금 나이에 생각해 보니 밥 먹고 살기가 가장 힘든 일이었어. 나는 까까머리 친구들을 다독이며 조용히 앨범을 덮었다.
* William Smith Clark, 1826~1886 :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 농과대학 학장 출신. 일본 홋가이도 대학 부학장으로 자연과학과 식물학을 가르친바있다. 그는 일본을 떠나면서 소년이여 야망을 가지라는 고별사를 남겼다. (Boys, be ambitious, not for money, not for selfish accomplishment, not for that evanescent thing which men call fame. Be ambitious for attainment of all that a man ought to be.)
'著書 > 꽃보다개(201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촌티를 못 벗으며 (0) | 2018.05.15 |
---|---|
차車 병원을 다녀오며 (0) | 2018.05.15 |
‘아포리즘aphorism 수필'의 가능성에 대하여 (0) | 2018.05.15 |
천생연분 (0) | 2015.04.17 |
벌 바둑의 변 (0) | 2015.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