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美世麗尼(2018)

된장녀

온달 (Full Moon) 2018. 2. 21. 09:17



된장녀

 

 

 

미모의 젊은 여성이 카페를 들어선다. 흔한 목도리가 아니다. 직감이 물 건너온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애완견 몰티즈를 안고 있는 모양이 그대로 한 폭의 그림 같다.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팔등신 몸매에 말만 걸어도 지성이 쏟아 나올 것 같은 모습이다. 그녀의 손가락이 유난히 길다고 느꼈다. 시선이 여기까지 이르자 나는 마시던 커피잔을 테이블에 얼른 내려놓고 말았다.

 

어디서 많이 보았던 풍광이다. 맞아, 바로 그 여자야. 어느새 나는 형사 콜롬보가 되어 서구풍의 냄새가 듬뿍 풍기는 여인에 대한 기억을 쫓기 시작했다. 내가 저 여인의 무엇을 알고 있기에?

 

지난해 여름 아침 산책길에 만난 여인에 관한 이야기다. 여인은 공원 벤치에 앉아있었고 멀리서 본 모양은 그때도 지금처럼 한 폭의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 곁에는 하얀색의 몰티즈 한 마리가 있었다. 이른 아침 이러한 분위기가 퍽 고급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운동 중에 한눈팔아야 할 일을 맞닥뜨리면 난감해진다. 눈이 즐거우면 마음이 산만해지니 그만큼 운동 효과는 감소하게 된다.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정면 돌파를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했다. 벤치 앞을 지나가야 정해진 반 시간을 채울 수 있을 텐데. 그녀는 일어날 기미가 전혀 없다. 나 자신의 운동도 잡념으로 방해받고 싶지 않지만 그림 같은 숙녀의 모습도 흩트리고 싶지 않았다.

늘어뜨린 긴 머리카락을 한 번씩 쓸어 올리는 풍이 ‘아름다운 갈색 머리’ 샴푸 CF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기는 쪽은 그녀보다 강아지가 먼저였다. 강아지가 내 양발 사이에 들어온 순간 나는 그놈을 밀치며 방정맞은 호의를 사양했다. 순간 내 시선이 머문 곳은 그녀의 길고 예쁜 손가락이었고, 검지와 장지 사이에 담배를 끼운 모습이 노련미가 있어 멋져 보였다. 그녀의 시선은 허공에 가 있어 내가 얼른 지나칠 여유를 주었다.

 

전혀 난감하지 않았다. 개는 여전히 통제되고 있지 않았지만, 졸졸 따라나서서 지나가는 길손을 배웅해 주었다. 이른 아침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공원에서 숙녀가 담배를 피다니. 외국에서 공부하다 잠시 귀국한 부잣집 규수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돌아오는 길, 벤치 쪽은 비어있었다. 그녀는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그녀가 앉았던 곳을 지나다가 화장실에서 자주 보았던 흔한 삼류 문장이 문득 생각났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였다. 그녀가 머물렀던 곳은 결코 아름답지 못했다. 벤치 아래는 피다 버린 팔리먼트Parliament 외제 담배꽁초와 하얀 크리넥스 여러 장이 널브러져 있었다. 반시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대여섯 개비나 되는 줄담배를 피울 수 있었을까?

 

아무리 순한 담배라도 그렇지. 꽁초는 왜 어지럽게 내던져 버렸을까? 개를 데리고 나온 이유가 개 운동을 시키기보다는 응가가 목적이었나 보다. 여기저기 흩어진 휴지가 뒤처리가 말끔하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개를 목줄 없이 풀어 놓았던 것으로 보아 오물 수거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고 밖을 나선 모양이다. 평년작 수준의 교양도 갖추지 못하고 추한 모습만 남겨놓았다. 결코, 머물다간 뒷자리가 아름답지 못했던 여성이었다.

그녀는 지금 커피를 마시고 지그시 눈을 내리감고 있다. 그녀의 머릿속은 보나마나 어지럽혀져 있을 것이다. 지난여름에 내가보고 느꼈던 기억 때문에 요조숙녀窈窕淑女가 갑작스레 된장녀로 추락하는 순간이다. 긴 목도리에 몰티즈가 치레의 한몫을 하고 있어도 지성이라고는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몽중미인夢中美人이 아니었던가. 그녀는 꼴값을 제대로 못 한 여자였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는 기억을 해내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에게 눈길을 빼앗겼던 사내의 헤픈 속성 또한 진정 아름다움을 아는 지성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도 덜 떨어진 ‘청국장 남’이라 불러야 마땅하겠지.



*된장녀 : 비싼 명품을 즐기는 여성 중, 스스로 능력으로 소비 활동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애인, 남자, 가족, 타인 등)에게 의존하는 여성들을 풍자한 유행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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