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書/美世麗尼(2018)

추태 1위가 ‘시끄러움’이라니

온달 (Full Moon) 2018. 2. 21. 09:21




추태 1위가 ‘시끄러움’이라니

 

 

‘한국 관광객 에티켓 수준 보통 이하’라 망신스럽다는 TV 보도가 나온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늘 반복되는 것이지만 화면에 나타난 통계치를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관광공사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올 1월부터 9월 사이 해외여행을 다녀온 만18세 이상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우리 국민의 해외여행 에티켓 수준은 5점 만점에 2.75점으로 ‘보통 이하’라고 한다. 전체 응답자 중 37.4%가 '에티켓이 부족하다'는 응답을 했다.

 

특별히 우리 여행객의 부끄러운 행동 1위는 '공공장소에서 시끄러움'이였다. 뷔페 음식을 밖으로 싸서 나온다거나 호텔 비품을 가지고 떠나는 식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한때는 배고팠던 백성이라 식탐을 내는 것도, 잠자리에서 타월 한 장 챙기고 나오는 것쯤은 점점 그 빈한 태를 벗고 있는 참이라 다행이다. 예전보다 많이 좋아진 것이라는 평가도 있어 위안을 삼는다. 하지만 공공장소에서의 시끌벅적 소란스런 대화는 말 만큼 쉽게 고쳐질 일이 아닌가 보다.

 

노는 행태가 분방해 곧 사고라도 칠 것 같은 서양인들이 의외로 공공장소에서는 예절이 바르다. 서로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행동한다. 항공기가 한 시간 정도 출발이 늦는다는 기내 방송이 나와도 술렁이거나 고함 하나 들리지 않는다. 기체에 이상이 발견되어 수정 후 이륙한다니 어쩔 것인가. 큰소리친다고 고장 난채로 이륙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날 나는 이들의 여유로움과 너그러움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우리 같았으면 어떠할까를 생각하며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서구와 다름이 없다. 예절 면에서는 오히려 더 우등 국가다. 자기 자식이 아주 작을지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면 야단맞는다. ‘남에게 피해지? じゃまでしよう?’ 한마디면 훈계가 조용히 끝난다. 쟈마じゃま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말이나 행동,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쟈마邪魔는 원래는 불교 용어로 악마를 지칭한 말이기도 하다. 일본의 어린이는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쟈마’에 대한 교육을 부모로부터 엄격히 받으면서 자란다. 학교나 가정에서 교육이 잘되고 일상생활을 통해 반복된 훈련을 거치기 때문에 작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내 목소리는 유난히 높다. 특히나 웃을 때는 정도가 더하다. 심하면 옆 사람을 툭툭 쳐가면서 박장대소한다. 혈액형 ‘O’형 덕분인지 급하기도 하지만 오지랖도 넓어 나서기도 잘한다. 이것들을 한곳에 모아보니 전형적인 ‘나 잘난’ 못난이 모습이다. 남정네의 호탕함을 자랑삼는 경상도 지방색도 한 역할 했을 것이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가는귀 어두워질 터이니 저절로 음정이 한 톤 높아질 것 같아서다.

 

우리 중에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이가 적지 않다. 의도적으로 자랑삼아 늘어놓는 목청 큰 수다는 과시용이요,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부지불식간에 쏟아 내는 큰 소리는 습관성이다. 시비에는 곧 목소리 큰 쪽이 이긴다는 말에도 자주 도취해버린다. 병인 줄도 모르고 다수는 에티켓 부족증을 심하게 앓고 있다. 국내에서 시끄러운 사람이 해외여행에서인들 별 수 있겠는가. 집에서 새는 물바가지는 밖에서도 샐 터이니까. 열거하는 항목들을 보고 있노라니 슬그머니 화가 났다.

 

언어가 달라 욕을 해도 못 알아들을 나라 밖이지만 우리끼리 나누는 높은 톤의 잡담은 누구나 성가시다고 할 것이다. 우리말이 악마의 저주가 되어 그들의 귀청을 때리기보다는 음악이 되어 아름답게 흘러들 수 있도록 목소리를 아끼자. 정숙한 여행객이란 칭송을 들을 때까지.

 


'著書 > 美世麗尼(2018)'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왕王이 아니라 졸卒이 되었다  (0) 2018.02.21
지금 즐기고 바로 행복하라  (0) 2018.02.21
아주머니 시비  (0) 2018.02.21
된장녀  (0) 2018.02.21
정(情)은 선불이다  (0) 2018.02.21